조희대, 국감서 선서 거부하고 “대법관 제청에 국회·대통령 관여 못 해”…대법관 한 자리 217일째 공석
10월 6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의 대법원 국정감사에서 조희대 대법원장은 증인 선서를 거부했다. 법사위는 그를 대법원을 대표하는 기관장이 아니라 일반증인으로 따로 불러 대법관 제청 경위를 묻겠다고 했다. 조희대는 준비해 온 A4 용지를 꺼내 읽었다. 대법원장이 국회의 동의 절차와 대통령의 임명 절차에 관여할 수 없듯이 국회와 대통령도 대법원장의 제청에 전혀 관여할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대통령과 미리 협의해 온 것은 헌법에 근거가 없는, 원활한 임명을 위한 자발적 협력이었다고 했다. 후보를 제청하는 순간 대법원장의 헌법상 권한과 의무는 다 끝났다고도 했다(연합뉴스).
선서는 하지 않았지만 조희대는 일부 질문에 직접 답했다. 대법원장이 국감에서 의원 질의에 답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해 국감에서는 약 90분 동안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는 오전 감사가 정회된 낮 12시 40분께 자리를 떴고, 오후 2시 44분에 다시 열린 감사에는 나오지 않았다. 노경필 법원행정처장은 감기가 심해졌다고 설명했다. 서영교 법사위원장은 허가 없이 자리를 뜬 것이라며 다시 출석하라고 요구했고, 고발 등 조처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이석을 둘러싼 고성이 그날 뉴스를 채웠지만, 이 장면 밑에 놓인 문제는 따로 있다. 노태악 전 대법관이 3월 3일 퇴임한 대법관 자리가 10월 6일로 217일째 비어 있다. 조희대는 후보를 올렸으니 할 일을 다 했다고 하고, 이재명 대통령은 그 후보를 임명하지 않겠다고 한다. 양쪽 모두 같은 헌법 조항을 근거로 든다. 이 글은 이 교착이 어느 한 사람의 고집보다 헌법이 대법관 임명을 짜 놓은 방식에서 나왔다고 본다. 그리고 그 구조에 비춰 보면 조희대의 해석도, 청와대의 해석도 헌법을 한쪽으로 기울여 읽고 있다고 본다.
두 기관이 서로 막을 수 있는 구조
헌법 제104조 제2항은 대법관을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정한다. 대법원장이 후보를 골라 대통령에게 올리고(제청), 대통령이 임명동의안을 국회에 보내 국회가 동의하면, 대통령이 임명한다.
이 구조에서 대법원장과 대통령은 서로를 막을 수 있다. 대법원장이 제청하지 않으면 대통령은 자기가 원하는 사람을 대법관에 앉힐 수 없다. 거꾸로 대통령이 임명동의안을 국회에 보내지 않으면 제청된 후보는 국회 문턱도 넘지 못한다. 대법관은 두 기관이 같은 사람에게 동의할 때만 나온다. 그런데 헌법은 두 기관의 뜻이 엇갈릴 때 어떻게 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미리 협의하라는 의무도, 대통령이 제청을 돌려보내고 다른 사람을 올리라고 요구하는 절차도 조문에 없다.
이 빈칸은 관행이 메워 왔다. 법원조직법에 따라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추천위원회)가 자리 하나에 3배수 이상을 추천하면 대법원장이 그 가운데 적임자를 고른다. 그다음 대법원의 사법행정을 맡는 법원행정처장이 청와대 민정수석과 물밑에서 조율하고, 합의가 되면 대법원장이 대통령을 직접 만나 제청한다(연합뉴스). 누구를 올릴지 미리 맞춰 두니 어느 쪽도 거부권을 꺼낼 일이 없었다. 관행이 작동하면 어떻게 되는지는 이번에도 확인됐다. 조희대가 8월 18일 노태악 후임과 함께 제청한 이흥구 대법관 후임 김성수는 사전 조율을 거쳤고, 국회 동의를 받아 9월 21일 취임했다. 같은 날 같은 절차를 밟은 두 후보의 운명을 가른 것은 합의가 있었느냐 하나였다.
협의가 무너진 경위
노태악 후임을 두고는 처음부터 협의가 엇갈렸다. 추천위원회는 1월 21일 현직 판사 네 명, 김민기·박순영·손봉기·윤성식을 추천했다. 보도에 따르면 청와대는 이재명 정부 첫 대법관이라는 상징성을 고려해 여성 법관 김민기를 원했다. 대법원은 김민기의 배우자가 현 정부에서 임명된 오영준 헌법재판관이라는 점을 들어 반대했다. 부부가 두 헌법기관 최고위직을 함께 맡는 데 대한 특혜 우려, 그리고 재판소원이 도입되면 남편이 아내가 참여한 대법원 판결을 헌법재판소에서 심리할 수 있다는 이해충돌 우려였다. 대법원이 또 다른 여성 후보 박순영을 절충안으로 냈지만 합의는 되지 않았다. 이 협의 내용은 공개된 기록이 아니라 익명 취재원을 근거로 한 보도라는 한계가 있다(SBS).
교착이 7개월 가까이 이어지자 양쪽은 각자 가진 권한을 꺼냈다. 8월 중순 노경필 법원행정처장은 추천된 후보 네 명에게 전화해 추천을 새로 하는 방안을 물었다가 상당수가 반대하자 접고 사과했다. 여권에서는 제청을 미루는 것 자체가 탄핵 사유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었다. 8월 18일 조희대는 합의되지 않은 손봉기 대구지법 부장판사를 대통령을 만나지 않고 서면으로 제청했다. 청와대는 8월 28일 손봉기의 임명동의안을 국회에 내지 않고 재제청을 요청했다. 실질적 협의 없는 일방적 제청이었다는 점, 후보들에게 추천을 다시 하자고 타진한 일이 절차의 공정성을 해쳤다는 점, 손봉기 제청이 대법원 구성의 다양화 요구에 맞는지 의문이라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청와대 브리핑). 조희대는 9월 22일 공문에 재제청을 요청하는 구체적 사유와 헌법적 근거가 적혀 있지 않다며 요청을 거부했다. 청와대는 대법원장의 제청권이 대통령의 임명권보다 앞선다는 위헌적 인식이라고 맞받았다. KBS는 서면 제청과 재제청 요청을 모두 사상 초유의 일이라고 불렀다.
양쪽 모두 상대의 거부권을 지운다
관행이 무너지자 양쪽은 헌법 조문으로 물러났다. 그리고 조문이 말하지 않는 부분을 각자 자기에게 유리하게 채우고 있다.
조희대의 해석부터 보자. 그는 사전 협의는 선택이었고, 제청으로 자신의 의무는 끝났으며, 대통령이 제청을 돌려보내고 다른 후보를 요구할 헌법적 근거는 없다고 본다. 이 말대로라면 대통령에게 남는 일은 제청된 사람을 국회에 넘기는 것뿐이다. 두 기관이 서로 막을 수 있는 구조가 대법원장 혼자 정하는 구조로 바뀐다. 법률가 다수는 이렇게 읽지 않는다. SBS는 대통령이 제청된 후보의 임명 절차를 거부할 수 있다는 해석이 법조계 다수라고 전했다. 김진한 변호사는 대통령이 제청된 사람을 무조건 임명해야 한다면 임명권이 형식뿐인 권한이 된다고 설명했다. 사전 협의가 의무는 아니라는 점에서 조희대와 의견이 같은 차진아 고려대 교수도 대법원장이 제청한 인물을 대통령이 꼭 임명해야 할 의무는 없다고 썼다.
조희대가 근거로 든 사실도 그의 결론을 받치지 못한다. 그는 국감에서 역대 대통령도 결과적으로 대법원장의 제청권을 끝내 다 존중해 왔다고 말했다. 그러나 역대 대통령이 제청을 받아들인 것은 제청 전에 이미 같은 후보에 합의했기 때문이다. 그 존중은 그가 선택이라고 부른 사전 협의가 만들어 낸 결과였다. 협의 없이 제청하자 대통령이 받아들이지 않은 8월 28일은, 협의를 빼면 존중도 사라진다는 것을 보여 줬다.
청와대의 해석은 반대 방향에서 같은 일을 한다. 대통령이 손봉기를 거부할 수 있다는 데까지는 다수 해석과 맞는다. 하지만 청와대는 거부에서 멈추지 않았다. 브리핑에서 제청권은 그 자체로 완결적인 권한이 아니라 대통령의 실질적 임명권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행사돼야 한다고 했고, 추천위원회의 추천 내용을 존중해 다시 제청하라고 요구했다. 기존 후보 네 명 가운데 손봉기를 뺀 세 명 안에서 다시 고르라는 뜻이다. 그러면 대법원장의 선택은 대통령이 받아들일 만한 사람으로 좁혀진다.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은 국감에서 대통령이 원하는 후보가 제청될 때까지 거부할 수 있다면 제청권은 껍데기만 남는다고 말했다. 차진아 교수는 추천위원회가 추천을 마치면 해산하도록 한 법원조직법에 비춰, 남은 세 명 중에서 다시 제청하라는 요구는 법률에 어긋난다고 봤다. 반면 임지봉 서강대 교수는 같은 자리의 절차가 아직 끝나지 않은 것으로 보면 기존 후보 가운데 다시 제청할 수 있다고 해석했다. 대통령이 제청을 거부한 뒤 추천 명단이 살아 있는지조차 법이 답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국감도 헌재도 판정할 수 없다
그렇다면 누가 판정하는가. 10월 6일 국감이 그 한계를 먼저 보여 준다. 법사위는 국회법 제129조와 국회증언감정법에 따라 조희대를 일반증인으로 불렀다. 이 법은 증인이 자신이나 가까운 친족이 형사처벌을 받을 염려가 있는 내용, 또는 변호사·의사처럼 법이 정한 직업이 업무상 알게 된 남의 비밀에 해당할 때 이유를 밝히고 선서와 증언을 거부할 수 있게 한다. 통상적인 직무상 비밀은 거부 사유가 아니고, 정당한 이유 없이 거부하면 처벌 대상이 된다(조문). 조희대가 든 이유 가운데 삼권분립과 진행 중인 인사의 민감성은 이 조문이 정한 거부 사유에 없다. 다만 국회가 헌법상 권한을 어떻게 행사했는지 증언을 강제할 수 있느냐는 별개의 헌법 문제다. 차진아 교수는 제청권 행사 경위에는 답할 의무가 없다고 본다.
선서 여부보다 중요한 것은, 선서를 했더라도 달라질 것이 없었다는 점이다. 법사위가 듣고 싶어 한 것은 왜 협의 없이 제청했느냐였고, 조희대는 선서 없이도 답했다. 협의는 의무가 아니라는 것이다. 다툼은 사실관계가 아니라 헌법 해석을 두고 벌어지고 있고, 국회 질의는 해석을 판정하는 절차가 아니다. 그날 여당 의원은 재제청 거부가 탄핵 사유라고 했고, 야당 간사는 재제청을 요구한 대통령이 증인으로 나와야 한다고 맞섰다. 각자의 해석을 한 번 더 확인했을 뿐이다.
헌법재판소도 이 질문에 곧바로 답하기 어렵다. 국민의힘 의원 109명은 9월 21일 대통령을 상대로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했다. 그런데 이 청구가 내세운 것은 국회의 임명동의권과 의원의 심의·표결권이지, 대법원장의 제청권이 아니다. 청와대와 대법원은 별도 청구를 검토하지 않는다고 했다. 게다가 헌재는 2015년 대통령이 조약 동의를 국회에 요청하지 않은 일을 의원들이 다툰 사건에서, 의원들에게 청구할 자격이 없다며 본안 판단 없이 각하했다. 지금 헌재에 걸린 유일한 사건이 제청권과 임명권 가운데 어느 쪽이 앞서는지에 대한 판단으로 이어지리라 기대하기 어렵다.
비어 있는 자리의 비용
판정할 곳이 없는 사이 비용은 쌓인다. 노태악 후임에 이흥구 대법관 퇴임까지 겹쳐 두 자리가 비었던 9월, 대법원은 대법관들이 나눠 사건을 심리하는 소부 세 곳을 4명·3명·3명으로 재편해 정족수를 맞췄다. 일요신문은 7월 말 형사 상고심 미제 사건이 1년 전보다 53.3% 늘었다고 분석했다. 같은 분석에서 형사 사건 처리량은 늘고 민사·행정 미제는 줄어, 공석만의 영향을 가려내기는 어렵다. 그래도 최고법원 한 자리가 7개월 넘게 비어 있는 것은 그 자체로 정상이 아니다. 교착은 다음 인선으로도 번질 수 있다. 내년 5월 천대엽 대법관, 6월 조희대 대법원장이 차례로 퇴임한다.
판단: 거부권은 둘 다 있다
지금 헌법 아래에서 대법관은 대법원장과 대통령이 같은 사람에게 동의할 때만 나온다. 그러니 상대에게 거부권이 없다고 주장하는 쪽은 틀렸다. 조희대의 해석은 대통령의 거부권을 지우고, 청와대의 해석은 대법원장의 선택권을 줄인다. 이번 국감에서 더 문제가 큰 것은 조희대의 발언이다. 지금까지 이 제도를 굴러가게 한 장치는 사전 협의 하나뿐이었는데, 그 협의를 해야 할 당사자가 국회에서 협의는 할 필요가 없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그 선언이 헌법 해석으로 굳어지면 다음 대법원장과 다음 대통령 사이에서도 같은 교착이 되풀이된다.
출구는 두 갈래다. 당장은 협의로 돌아가야 한다. 같은 날 제청된 김성수 대법관이 문제없이 취임했다는 사실은, 두 기관이 합의하면 지금 제도로도 대법관이 나온다는 것을 보여 준다. 길게는 교착이 생겼을 때의 절차를 법률로 정해야 한다. 헌법 제102조 제3항은 법원의 조직을 법률로 정하게 하고, 추천위원회도 그렇게 법률로 만든 제도다. 조희대는 국회에 이런 제도를 만들 권한이 헌법상 없다고 주장하지만, 법원조직법은 이미 제청 절차의 앞단을 정하고 있다. 대통령이 제청을 거부할 때 이유를 밝혀야 하는지, 거부한 뒤 기존 추천 명단이 살아 있는지 아니면 추천위원회를 새로 꾸려야 하는지, 언제까지 다시 제청해야 하는지를 법이 정해 두면, 이번처럼 양쪽이 각자의 해석을 들고 국감장에서 맞서는 일을 줄일 수 있다. 차진아 교수처럼 대법관을 국회가 뽑도록 헌법을 고치자는 주장도 있지만, 그 전에 법률로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217일째 빈자리가 묻는 것은 누구의 헌법 해석이 이기느냐가 아니다. 판정해 줄 곳도 없는 싸움을 언제 멈추고 다시 마주 앉느냐다.
밑줄 친 문장을 누르면 그 문장의 배경 설명을 읽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