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 사회

러시아 페스트 연구소 연구원 '원인 불명 폐렴' 사망…확산 위험은 낮지만 사인 설명은 비어 있다

러시아 동시베리아의 이르쿠츠크주에는 페스트(흑사병)를 비롯한 위험 감염병을 다루는 국가 연구소가 있다. '이르쿠츠크 시베리아 및 극동 항페스트 연구소'는 시베리아와 몽골·중국 접경 지역의 야생 설치류 사이에서 자연적으로 돌고 있는 페스트균을 감시하고, 그 균을 실험실에서 보관하며 연구한다. 러시아의 위생·역학 감독을 맡은 연방기관 로스포트레브나드조르 소속이다. 이 연구소의 실험실 직원 다리야 시필로바(28)가 10월 초 중증 폐렴으로 숨졌다. 시필로바는 올해 3월 학술대회에 편성된 시베리아 페스트균의 항생제 감수성 연구에 공동저자로 이름을 올린 연구자다. 페스트균을 다루던 사람이 원인을 알 수 없는 폐렴으로 사망한 것이다.

자유유럽방송(RFE/RL) 계열 러시아어 매체 Siberia.Realities와 현지 독립매체 People of Baikal의 취재를 종합하면 경과는 이렇다. 시필로바는 9월 25일 마지막으로 연구소에 나왔고, 29일 중증 폐렴으로 이르쿠츠크 근교 소도시 셸레호프의 병원에 입원해 인공호흡기 치료를 받다가 10월 2일로 넘어가는 밤 숨졌다. 10월 1일 저녁부터 이 병원 입원 부서는 신규 입원과 퇴원을 멈췄고, 2일에는 로스포트레브나드조르 청장 안나 포포바가 이르쿠츠크로 왔다. 시필로바와 접촉했을 수 있는 약 200명이 병원에서 매일 검사를 받으며 관찰 대상이 됐고, 이와 별도로 연구소 직원 60여 명은 연구소 건물 안에 격리돼 바닥과 의자에서 잠을 잤다. (Siberia.Realities 취재)

이 소식이 전해지자 한국 언론에는 '21세기 흑사병 공포' 같은 제목이 붙었다. 사람들이 묻는 것은 두 가지다. 퍼지는가, 그리고 정말 페스트였나. 두 질문은 따로 봐야 한다. 퍼지는지는 지금까지 나온 사실로 상당 부분 답할 수 있다. 답이 없는 쪽은 무엇이 시필로바를 죽였느냐이고, 러시아 당국이 이 질문을 비워 둔 방식이 이번 사건의 진짜 문제다.

퍼지는가: 답이 나와 있는 질문

폐렴형 페스트는 페스트균이 폐를 감염시킨 병이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환자와 가까이서 오래 접촉할 때 기침 비말로 사람 사이에 옮고, 증상이 없는 사람이 옮긴 기록은 없으며, 균이 많은 가래를 기침으로 뱉는 단계에서 전파 위험이 가장 높다. 코로나19처럼 증상 없는 사람들 사이로 조용히 번지는 병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래서 퍼졌는지는 환자 곁에 있던 사람들을 검사해 보면 판단할 수 있다.

그 검사 결과가 나와 있다. 로스포트레브나드조르는 접촉자를 매일 검사한 결과 코로나19 2건과 리노바이러스(감기 바이러스) 2건 외에 다른 병원체는 나오지 않았다고 발표했다. 10월 5~6일에는 검사 결과와 건강 상태를 근거로 접촉자의 60%에 대한 관찰을 끝냈다. 세계보건기구(WHO)도 6일 제네바 브리핑에서 위험을 이르쿠츠크 '중간~낮음', 러시아 전체 '낮음', 유럽 '매우 낮음'으로 평가했다. 지금 확인된 사실로는 이 사건을 팬데믹의 시작으로 볼 근거가 없다.

무엇이 그를 죽였나: 비어 있는 질문

확산과 달리 사망 원인에는 답이 없다. 로스포트레브나드조르가 10월 4일 내놓은 설명은 세 가지로 요약된다. 진단은 '원인이 확인되지 않은 폐렴'이다. 환자 검체를 확대 검사했지만 '직업 활동과 관련된 미생물'은 나오지 않았다. 연구소 생물안전 점검위원회와 포포바 청장이 보낸 전문가위원회 모두 병원체 취급 중 사고를 찾지 못했다. 당국은 이를 근거로 지역 상황이 '안정적'이라고 했다.

이 발표에는 빠진 것이 많다. 페스트가 아니라고 명시하지 않았고, 폐렴을 일으킨 병원체가 무엇인지도 밝히지 않았다. 어떤 검체를 언제, 어떤 방법으로 검사했는지도 없다. 원인을 모른다면서 직무와는 관련이 없다고 결론 내린 근거가 보이지 않는다. 검체를 언제 채취했는지는 사소한 문제가 아니다. CDC 지침은 페스트 의심 환자의 검체를 가능하면 항생제 치료 전에 채취하라고 권고한다. WHO 대변인도 6일 브리핑에서 당국이 폐렴형 페스트가 사망 원인인지 조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WHO가 보기에도 이 질문은 아직 닫히지 않았다.

이 빈칸이 왜 중요한가

빈칸이 문제인 이유는 페스트라는 병의 성격에 있다. WHO에 따르면 폐렴형 페스트는 치료하지 않거나 늦게 치료하면 치명적이지만, 증상이 시작된 뒤 24시간 안에 치료하면 회복률이 높다. 그래서 CDC는 감염성 물질에 우발적으로 노출된 실험실 직원에게 7일간 예방 항생제를 고려하라고 권고한다. 페스트는 일찍 알아채기만 하면 죽음까지 가지 않을 수 있는 병이다.

이 성격 때문에 페스트 연구소 직원이 폐렴으로 숨졌다는 사실은 두 갈래 질문을 남긴다. 직업 노출이 있었다면, 왜 노출이 알려지지 않았거나 일찍 치료받지 못했는가. 노출이 없었다면, 그를 죽인 것은 무엇인가. 모스크바국립대 바이러스학자 알렉세이 아그라놉스키도 당국 발표 직후 왜 항생제를 주지 않았는지, 얼마나 오래 앓았는지 물었다. 어느 갈래든 답은 검사 기록과 치료 경과 안에 있고, 둘 다 공개되지 않았다.

치료 경과에 관해 나온 말은 하나뿐이다. 연구소의 전 동료가 유족에게서 들었다며 Siberia.Realities에 "의료진이 끝까지 중증 코로나로 보고 인공호흡기를 달았고, 항생제는 너무 늦게 투여했다"고 전했다. WHO 대변인도 "병은 처음에 전형적인 급성 호흡기 바이러스 감염처럼 나타났다"고 말했다. 이 말들이 맞다면 문제는 실험실 사고가 아니라, 페스트균을 다루는 직원이 폐렴으로 실려 왔는데 그 가능성을 일찍 의심하지 못한 진료에 있을 수 있다. 다만 유족의 말은 전 동료 한 사람을 거쳐 나온 것이고, 병원도 보건 당국도 이 주장에 답하지 않았다. 이 사건의 판단이 갈리는 곳이 바로 여기인데, 그것을 가를 기록은 러시아 당국만 갖고 있다.

행동은 위험을, 말은 안정을 가리켰다

당국이 실제로 한 일은 발표와 결이 다르다. 병원 입원 부서를 닫고, 연방 감독기관 수장이 현장에 오고, 접촉자 약 200명을 병원에서 관찰하고, 연구소 직원 60여 명을 건물 안에 머물게 했다. 러시아 위생규칙(SanPiN 3.3686-21)은 위험 병원체 실험실에서 사고를 일으켰거나 사고 구역에 있었던 직원, 해당 병원체에 맞는 증상을 보이는 직원을 격리하도록 정해 둔다. 당국은 위험 병원체에 노출됐을 가능성을 전제로 움직인 것이다.

그 조치 자체는 옳았다. 영국 임페리얼칼리지 감염병 전문가 말릭 지바니는 확진 정보를 보지 못했지만 가능한 노출 위험을 고려하면 접촉자 선별검사와 격리는 적절해 보인다고 평가했다. 문제는 행동과 말의 거리다. 주민이 본 것은 문 닫힌 병동과 격리된 연구소였고, 들은 것은 '원인이 확인되지 않은 폐렴'과 '안정'이었다. 이 거리를 메우는 설명은 나오지 않았다.

공백을 채운 것은 소문과 삭제였다

설명이 없는 동안 다른 이야기들이 그 자리를 채웠다. 가장 널리 퍼진 것은 시필로바가 9월 25일 페스트균 시험관을 깨뜨렸다는 시험관 파손설이다. 이 이야기를 처음 전한 People of Baikal은 출처를 이르쿠츠크 기자 파벨 스테파노프와 텔레그램 매체 Mash로 밝혔고, 텔레그램에서는 공식 확인도 독립 검증도 없다고 덧붙였다. 이후 다른 매체들은 같은 출처를 되풀이했을 뿐인데, 한국의 노컷뉴스는 이것을 일어난 사실처럼 썼다. 로스포트레브나드조르의 점검위원회 발표는 이 설을 부인하지만, 앞서 본 대로 무엇을 확인했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관료들의 말은 소문을 키웠다. 이웃 부랴티야 공화국 수장 알렉세이 치데노프는 2일 "페스트로 사망한 여성은 부랴티야에 오지 않았다"고 썼다가 '페스트로 사망했을 수 있는'으로 고쳤다. 바이칼스크 시 당국은 3일 '페스트 감염 비공식 정보'를 들어 셸레호프 방문을 자제해 달라는 공지를 올렸다가 두 시간 만에 지웠다. 방송사 REN TV는 관련 게시물 다섯 건을 삭제했다. 크렘린 대변인 드미트리 페스코프는 5일 소문과 추측 대신 로스포트레브나드조르의 공식 발표를 들으라고 말했다.

주민들은 그 사이 답을 기다렸다. People of Baikal에 따르면 이르쿠츠크 주민들은 2일부터 주지사와 보건 당국에 정말 페스트인지, 아이를 학교와 유치원에 보내도 되는지 물었다. 그동안 주지사 이고리 코브제프의 텔레그램에는 축제와 공연 소식이 올라왔고, 로스포트레브나드조르의 진단명은 4일에야 자체 채널이 아니라 국영 통신사 TASS를 통해 나왔다. 셸레호프와 이르쿠츠크 약국에서는 항생제가 팔려 나갔다. 발표가 늦고, 나온 말이 고쳐지고 지워질 때마다 당국이 무언가를 숨긴다는 해석이 힘을 얻었다.

러시아가 공개해야 할 것

지금 확인된 사실로 내릴 수 있는 판단은 이렇다. 확산 위험은 낮고, 접촉자를 격리하고 검사한 조치는 적절했다. 그러나 러시아 당국의 설명은 실패했다. '사고는 없었다'는 선언은 무엇을 조사해 그렇게 판단했는지가 공개되지 않으면 믿을 근거가 되지 못한다. 위험 병원체를 다루는 기관에 대한 신뢰는 선언이 아니라 검사 범위와 치료 경과를 공개하는 데서 생긴다.

공개해야 할 것은 분명하다. 시필로바의 어떤 검체를 언제, 어떤 방법으로 검사해 페스트균을 배제했는지. 입원 뒤 언제 어떤 항생제를 썼는지. 연구소 점검위원회가 무엇을 확인하고 사고가 없다고 판단했는지. 미국 국무부는 러시아에 정확한 정보를 신속하고 공개적으로 공유하라고 요구했고,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도 신뢰할 수 있는 역학·검사 결과를 요구했다. 영국 레딩대 미생물학자 사이먼 클라크는 세부 정보 없이는 이 죽음이 단일 사례인지, 직업적 노출인지, 더 넓은 전파의 증거인지 가를 수 없다고 했다. 요구는 모두 같은 곳을 가리킨다.

위험 병원체 실험실에서 사람이 쓰러지면 대응은 세 단계로 이뤄진다. 접촉자를 찾아 격리하고, 검사로 병원체를 확인하거나 배제하고, 그 근거를 공개한다. 러시아는 첫 단계를 눈에 보이게 했고, 두 번째 단계는 결론만 말했으며, 세 번째 단계는 건너뛰었다. 앞 단계가 보이는데 뒤 단계가 닫혀 있으면 사람들은 최악을 상상한다. 이르쿠츠크에서 일어난 일이 그것이다. 이 뉴스에서 걱정할 것은 흑사병의 귀환이 아니다. 위험한 균을 다루던 사람이 숨졌는데 그 이유를 아무도 설명하지 않는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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