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DMZ 폭발은 MDL 남쪽 북한 지뢰' 결론 내고 제거 착수…국감은 '도발이냐 사고냐'에 머물렀다
지난달 21일 서부전선 비무장지대(DMZ)에서 지뢰 두 발이 58초 간격으로 터졌다. 육군 제25보병사단 장병 18명이 새 수색로를 내고 철수를 준비하던 참이었다. 공병 부사관이 왼발을 내딛는 순간 첫 폭발이 났고, 그를 살피러 다가간 수색대대장이 1m쯤 떨어진 곳에서 두 번째 지뢰를 밟았다. 대대장은 발목이 절단됐고, 부사관은 골절상을, 간부 한 명은 경상을 입었다. (뉴스1)
2주 뒤인 10월 5일, 군의 작전을 지휘하는 합동참모본부(합참)가 최종 조사 결과를 내놓았다. 부상자 옷과 수술 중 꺼낸 파편에서 폭약(TNT)과 플라스틱(멜라민 수지) 성분이 나왔고, 이 성분이 북한군 '수지반보병지뢰'와 같았고, 지뢰는 흙 속 3~10cm 깊이에 묻혀 있었다. 지뢰와 폭발 구덩이의 간격과 배열로 보아 물에 떠내려온 것이 아니라 일부러 깐 지뢰밭이었다. 정전협정 이행을 관리하는 유엔군사령부(유엔사)와 함께 GPS로 잰 폭발 지점은 군사분계선(MDL) 남쪽 10여 m였다. 결론은 북한군이 이른바 '국경선 요새화' 작업을 하면서 MDL 남쪽에 묻은 지뢰에 우리 장병이 다쳤다는 것이다. 군은 같은 날 낮 12시 51분 그 지뢰밭을 폭파해 없앴고, 북한이 스스로 치우지 않으면 MDL 남쪽의 북한 지뢰를 계속 제거하겠다고 했다. (합참 최종 발표)
이튿날 시작된 국정감사는 이 결론을 받아 든 정부가 '얼마나 세게 대응하느냐'를 두고 갈라졌다. 야당 국민의힘은 2015년 목함지뢰 사건 때와 비교해 정부가 느리고 약하다고 몰아붙였다. 조현 외교부 장관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에 서한조차 보내지 않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 공방은 정작 이번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을 비켜 간다. 그 지뢰가 왜 거기 있었고, 우리 장병은 왜 거기 들어갔으며, 같은 일을 막으려면 무엇을 해야 하느냐는 질문이다. 그 답은 휴전선이 하나의 선이 아니라는 데서 시작한다.
군사분계선은 하나가 아니다
군사분계선은 1953년 정전협정 때 지도 위에 손으로 그은 선이다. 이 선을 땅에 옮기려고 표지판 1,292개를 박았고, 표지판 사이를 이은 눈에 보이지 않는 선을 경계로 삼았다. 흔히 떠올리는 철조망은 MDL에 없다. 그런데 1:50,000 지도에 그은 그 선의 굵기는 실제 땅에서 50m쯤 되고, 표지판은 낡거나 사라져 지금은 200여 개만 남았다. (한겨레 권혁철 칼럼)
그래서 지금 DMZ에는 기준선이 여럿이다. 한국군은 2004년 미국 국가지리정보국이 만든 군사지도의 선을 쓴다. 유엔사는 2016년 10m 간격으로 좌표 2만3천여 개를 찍어 이은 선을 쓴다. 남은 표지판을 이은 선이 또 있고, 북한군은 표지판 연결선이나 자기들만의 선을 쓰는 것으로 합참은 판단한다. 지난해 12월 합참 설명으로는 한국군 선과 유엔사 선이 어긋나는 지점이 60%쯤이고, 차이는 지역에 따라 수십 m에 이른다. 합참이 전방 부대에 내린 지침도 표지판이 없는 곳에서는 두 선 가운데 더 남쪽 선을 고려해 북한군 침범에 대응하라는 것이다. 한국군 스스로도 선 하나만으로는 판단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연합뉴스)
이 어긋남을 문제로 끌어올린 것은 북한이다. 국방부도 기준선 불일치가 불거진 배경으로 북한의 작업을 꼽았다. 북한은 2023년 말 남북 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로 규정했다. 이어 2024년 4월부터 MDL 가까이에 불모지와 지뢰지대, 전술도로, 철책을 만드는 공사를 시작했고, 2025년 3월에는 작업을 MDL 전 구간으로 넓혔다. 이것이 북한이 말하는 '국경선 요새화'다. 북한군 총참모부는 이를 남쪽과 영토와 주권 행사 영역을 분리하는 조치라고 설명했다. 올해는 하루 최대 7천 명이 투입됐고, 북한군의 MDL 침범은 2024년 9회, 2025년 17회, 올해 50여 회로 늘었다. (합참, 뉴스토마토)
경계선 위에서 공사가 벌어지면, 어느 선을 믿느냐에 따라 같은 땅이 북쪽도 되고 남쪽도 되는 폭 수십 m의 띠가 생긴다. 합참 설명에 따르면 동부 전선의 북한군은 MDL 남쪽 10여 m 지점을 매일 순찰로로 쓰다가 경고사격을 받으면 지도를 꺼내 자기 위치를 확인한다. 자기들은 선을 넘지 않았다고 여긴다는 것이다. 합참이 파악한 MDL 남쪽의 북한 지뢰 매설 추정지는 여러 곳이고, 평균 20여 m 남쪽으로 들어와 있다. 이번 지뢰밭도 이 띠 안에 있었다. 북한군이 알고도 남쪽에 묻었든, 자기들 선을 따라 묻은 곳이 남쪽이었든 결과는 같다. 한국군과 유엔사가 남쪽이라고 판단하는 땅에 지뢰가 깔린다.
정전협정을 해석하는 방식이 이 띠를 더 무겁게 만든다. 한국군은 DMZ 안의 장애물 설치 자체를 정전협정 위반으로 보지만, 유엔사는 MDL 북쪽에서 중화기 없이 하는 철책·도로 공사는 위반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9월 30일 유엔사가 정전협정 위반이라고 판정한 대상도 MDL 남쪽에서 발견된 북한 지뢰 1발이었다. 같은 북한 지뢰라도 위반이냐 아니냐는 그것이 선의 어느 쪽에 있느냐로 갈린다. 그런데 그 선이 하나로 정해져 있지 않다. (노컷뉴스, 뉴시스)
그날 장병들은 왜 그 띠 안에 있었나
9월 21일 작전은 바로 이 띠를 확인하러 들어간 작전이었다. 합참 설명에 따르면 목적은 북한군 지뢰 매설이 의심되는 지역을 유엔사가 조사할 수 있도록 수색로를 미리 개척하는 것이었다. 합참은 지난해 12월에도 감시 사각지대에서 MDL 일대의 지뢰 매설 지역을 정찰 자산으로 확인했다고 밝힌 바 있다. 다만 그곳이 MDL 남쪽인지는 단정하기 어렵다고 했었다. 위험이 의심되는 곳이었기 때문에 들어간 것이다. (SBS, 연합뉴스)
그 위험한 곳에서 무엇이 어긋났는지를 두고는 엇갈린 설명이 쌓였다. 9월 28일 군은 사고 지점이 북한군 매설 추정 지역에서 '수십 m' 떨어져 있었다던 첫 설명을 '10여 m'로 고쳤다. 같은 날 합참 관계자는 원래 계획과 다른 방향으로 진입했다는 진술이 있다고 했다. 국민일보는 병력이 계획 범위를 넘어 MDL 쪽으로 더 들어갔으며 추가 안전조치는 없었다고 보도했다. 공병들은 탐지기로 땅을 훑으며 나아갔지만 플라스틱 지뢰를 찾지 못했다. 강신철 국방부 장관은 수풀 때문에 탐지기를 땅 가까이 대지 못했을 가능성을 추정했다. 대대장이 방호덧신을 신었는지에 대해서는 신었다는 첫 설명과 벗는 모습을 봤다는 진술이 엇갈렸다. (연합뉴스, 국민일보, 채널A)
10월 5일 최종 발표는 이 질문들에 답하지 않았다. 발표가 다룬 것은 지뢰의 종류와 매설 여부, 위치였다. 경로를 누가 왜 바꿨는지, 탐지가 왜 실패했는지, 덧신은 어떻게 된 것인지는 빠졌다. '누구의 지뢰인가'에는 답했지만 '우리 장병이 왜 그 지뢰 위에 서 있었나'에는 답하지 않은 것이다.
같은 위험이 되풀이되는 이유
이 빈칸이 지난 일로 끝나지 않는 것은 군이 같은 띠에 또 들어가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국방부는 6일 MDL 남쪽 지뢰 제거 작전을 순차적으로 이어 가겠다고 밝혔고, 매설 추정지는 여러 곳이다. 지뢰를 치우려면 장병이 다시 미확인 지뢰지대로, MDL에서 불과 10~20m 떨어진 곳까지 들어가야 한다. 그 작전들은 9월 21일과 같은 종류의 위험을 안고 간다. (뉴스1)
북한의 반응은 이 위험을 키운다. 북한 외무성은 6일 성명에서 군의 최종 조사 결과를 '자작극'이라고 불렀다. 한국군의 지뢰 제거에는 상관하지 않겠다면서도 “그 군화발이, 그 불꽃이 우리 영토를 1mm라도 침범한다면” 즉시 대응하겠다고 했다. 앞으로 한국 땅에서 비슷한 일이 생겨도 “전적으로 사고를 당한측의 책임”이라고도 했다. 문제는 북한이 말하는 '우리 영토'가 어느 선을 기준으로 하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점이다. 한국군이 MDL 남쪽이라고 판단해 지뢰를 치우는 자리가 북한이 쓰는 선으로는 북쪽일 수 있다. 기준선이 정리되지 않는 한 지뢰 제거 작전은 그 자체로 충돌의 빌미가 될 수 있다. 통일연구원 홍민 선임연구위원은 북한이 요새화를 서둘러 끝내는 데 집중하고 있어 물리적 충돌까지 가지는 않으리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이 전망은 북한의 선택에 기댄 것이다. (연합뉴스, 연합뉴스 분석)
정부도 이 구조를 모르지 않는다. 합참은 올해 초부터 유엔사와 기준선을 맞추는 전담팀(TF)을 운영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11월 북한에 기준선을 논의할 군사회담을 제안했다. 북한은 응답하지 않았고, 외무성은 이번 성명에서도 자기 영토 안에서 군사주권을 행사하는 문제를 “그 어떤 경우에도 적수국과 논의하지 않을 것”이라고 못박았다. 북한과 선을 합의할 길이 막혀 있다면 적어도 한국군과 유엔사의 선은 하나여야 한다. 지금은 한국군이 '남쪽'이라고 판단하는 지도와 유엔사가 정전협정 위반을 판정하는 지도가 서로 다르다. (뉴스1)
'도발이냐 사고냐'가 가린 것
국감의 공방은 이 문제를 거의 다루지 않았다. 야당이 문제 삼은 것은 주로 말과 수위였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이재명 대통령이 10월 1일 국군의날 기념사에서 이번 일을 '불의의 사고'라고 부르며 북한을 언급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청와대는 부상 장병을 위로하는 문맥이었다고 해명했다. 외교통일위원회 국감에서는 권영세 국민의힘 의원이 2015년처럼 안보리 서한을 보내지 않는다며 대응이 늦다고 질타했다. (뉴스핌, 뉴스핌, 연합뉴스)
2015년과 견주는 것은 자연스럽지만, 두 사건은 모양이 다르다. 2015년 8월 4일 폭발 뒤 한국 정부는 안보리에 보낸 서한에 북한이 한국군 순찰로에 목함지뢰 3발을 '최근' 설치했다고 적었다. 순찰하는 한국군을 노린 매설이었다는 판단이다. 정부는 조사 결과를 발표한 날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했고, 북한의 포격과 남북 고위급 접촉을 거쳐 북한이 유감을 표명했다. 이번 지뢰는 유엔사 평가로 12개월 이전에 설치됐고, 군은 이를 북한의 요새화 작업과 연결했다. 연합뉴스는 이번에는 북한군이 한국군을 노려 매설했다는 근거가 2015년보다 약하다고 분석했다. 북한군이 MDL 남쪽에 지뢰를 묻었고 그것이 정전협정 위반이라는 점은 같다. 그러나 그 지뢰가 한국군을 겨냥한 공격이었다는 증거는 이번 발표에 없다. 대응 수위를 2015년에 맞추라는 요구는 이 차이를 건너뛴다. (2015년 안보리 서한, 세계일보, 연합뉴스 분석)
'도발이냐 사고냐'는 정부 안에서도 실질적으로 이미 정리돼 있다. 군은 북한군 지뢰라고 공식 결론을 냈고, 권오을 국가보훈부 장관은 국감에서 이번 일을 “북한의 도발”이라고 평가했다. 강윤진 보훈부 차관은 발목이 절단된 대대장이 전상(戰傷) 인정을 받을 것으로 내다봤다. 근거는 국가유공자법 시행령 조항이다. 이 조항은 '적이 설치한 위험물에 의한 부상'을 전투 중 부상과 같은 범주에 넣는다. 국가가 장병의 부상을 다루는 법적 범주는 이미 '적이 묻은 지뢰'다. 대통령의 단어 하나를 두고 벌인 싸움은 이 실질에 아무것도 보태지 않는다. (뉴시스, 뉴스1)
그렇다고 정부의 외교 대응이 다 설득력 있는 것은 아니다. 조현 장관은 안보리 의장성명, 그보다 강한 결의안, 한국 명의 서한, 그리고 “효과를 생각해” 서한도 보내지 않는 방안까지 네 가지를 검토 중이라고 했다. 의장성명은 15개 이사국 전체의 합의가 필요하다. 결의는 9개국 이상의 찬성과 상임이사국의 거부권 불행사가 필요하다. 서한은 한국이 혼자 보내 공식 문서로 남길 수 있다. 서한의 쓸모는 북한을 압박하는 데 있지 않고, 조사 결과를 국제사회의 공식 기록으로 남기는 데 있다. 북한이 군과 유엔사의 결론을 '자작극'이라고 부르는 지금, 그 기록의 값은 오히려 크다. 정부가 이미 공개적으로 내린 결론을 유엔 문서로 남기는 일을 망설일 이유는 지금까지 나온 정부 설명에서 찾기 어렵다. 서한을 보내는 것은 2015년식 대응을 되풀이하는 일도, 긴장을 키우는 일도 아니다. (한국일보, 안보리 표결 절차)
정부가 먼저 내놓아야 할 것
이번 폭발은 하나로 정해지지 않은 군사분계선 위에서 북한이 '국경'을 굳히는 공사를 벌이는 구조에서 나온 인명 피해다. 그 구조는 그대로이고, 북한은 대화를 거부하면서 다음 사고의 책임까지 미리 한국에 떠넘겼다. 이 상황에서 군의 지뢰 제거는 맞는 방향이다. MDL 남쪽에 깔린 지뢰를 그대로 두는 것보다 낫다. 그러나 제거 작전을 더 하기 전에 정부가 먼저 내놓아야 할 것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9월 21일 작전의 안전 조사 결과다. 경로가 왜 바뀌었고 탐지가 왜 실패했는지 모르는 채 장병을 같은 띠로 다시 보내서는 안 된다. 다른 하나는 한국군과 유엔사가 함께 쓰는 하나의 기준선이다. 두 기관이 같은 선 위에서 판단해야 제거 작전마다 '이곳은 남쪽'이라는 근거가 흔들리지 않는다. 북한의 '자작극' 주장에도 한목소리로 반박할 수 있다. 안보리 서한은 그 위에 얹는 기록이다. 국감이 물어야 했던 것은 대통령이 어떤 단어를 썼느냐가 아니라 이 셋이 언제 나오느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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