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명태균 '무상 여론조사' 2심 무죄…'합의 없었다'는 근거 있지만 '정치적 조언' 법리는 남겨선 안 된다
서울고등법원 형사7부(재판장 구회근)가 10월 7일 윤석열 전 대통령과 명태균씨의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 항소심에서 두 사람에게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윤 전 대통령은 대선을 준비하던 2021년 6월부터 2022년 3월까지 아내 김건희씨와 함께 명씨에게서 약 2억7000만원어치 여론조사 58회를 공짜로 받은 혐의로, 명씨는 그 조사를 준 혐의로 2025년 12월 기소됐다. 명씨는 경남 창원을 기반으로 여론조사 영업과 정치인 상대 판세 조언, 인물 연결을 해 온 사람으로, 언론은 그를 '정치 브로커'라 부른다. 석 달 전 1심은 58회 가운데 부부에게 직접 전달된 14회를 유죄로 보고 윤 전 대통령에게 징역 2년, 명씨에게 징역 1년6개월을 선고했다. 항소심은 그 14회까지 모두 무죄로 돌렸다. 기소와 공소 유지를 맡아 온 김건희 특별검사팀은 대법원에 상고하겠다고 밝혔다.
이 판결에는 무죄 이유가 두 개 들어 있다. 첫째 이유는 "부부와 명씨 사이에 여론조사를 하고 공짜로 주기로 한 합의를 보여 주는 증거가 없다"는 사실 판단이다. 둘째 이유는 "부부가 받은 것은 정치적 조언이지 돈으로 환산할 재산상 이익이 아니다"라는 법리 판단이다. 이 글의 판단은 이렇다. 첫째 이유는 기록에 근거가 있다. 둘째 이유는 이 사건의 결론을 내는 데 필요하지도 않았고, 그대로 굳으면 정치자금법이 막으려는 '돈 대신 용역으로 하는 기부'에 길을 열어 준다. 대법원이 가려내야 할 것은 이 둘째 이유다.
정치자금법은 공짜 여론조사를 어떻게 보나
두 이유를 나눠 평가하려면 먼저 정치자금법이 무엇을 '기부'로 보는지 알아야 한다. 정치자금법은 현금만 정치자금으로 보지 않는다. 제3조는 정치활동에 드는 비용도 정치자금에 넣고, 제3자가 그 비용을 대신 부담하거나 물건·시설을 공짜로 빌려주거나 빚을 깎아 주는 것도 기부로 정한다. 제2조는 법이 정하지 않은 방법으로 정치자금을 주고받는 것을 금지한다. 여론조사는 전화를 돌리고 응답을 모으는 데 실제로 돈이 드는 용역이다. 그러니 정치인이 내야 할 조사 비용을 누군가 대신 내 주면, 돈이 정치인의 계좌를 한 번도 거치지 않았어도 기부가 된다.
다만 여기에는 조건이 붙는다. 여론조사 결과를 받았다는 사실만으로는 기부가 되지 않는다. 신문에 실린 여론조사를 읽는 것을 기부라고 하지 않는 것과 같다. 기부가 되려면 그 조사가 정치인을 위해 실시됐고 비용을 다른 사람이 떠안기로 했다는 사정, 곧 양측의 합의가 있어야 한다. 법원은 이를 '의사 합치'라고 부른다. 1심도 여론조사를 공짜로 주고받는 것 자체가 곧바로 위법은 아니지만 합의에 따라 제공하면 비용 상당의 기부가 된다는 전제에서 출발했다. 이 사건은 처음부터 부부와 명씨 사이에 그런 합의가 있었느냐는 사실 문제로 갈리게 되어 있었다.
같은 기록, 엇갈린 네 판결
그 사실 문제에서 법원들은 엇갈렸다. 김건희씨도 같은 58회 여론조사를 받은 혐의로 따로 기소됐는데, 1심과 항소심이 모두 이 혐의를 무죄로 봤다. 김건희씨 항소심이 파악한, 부부에게 전달된 조사도 14건이었다. 전달 건수는 같았고, 갈린 것은 그 전달을 합의의 결과로 읽느냐였다.
윤 전 대통령 1심은 합의가 있었다고 읽었다. 판결문에 따르면 명씨가 여론조사로 당선을 돕겠다는 취지로 말하자 김건희씨가 "잘 부탁한다. 명 선생님만 믿겠다"고 답했고, 이후 명씨에게 윤 전 대통령의 전화번호를 건넸으며, 명씨를 사무실이 아닌 자택으로 불렀다. 1심이 가장 무겁게 본 것은 그다음이다. 윤 전 대통령이 지지율 격차가 작게 나온 조사에 불만을 드러낸 뒤 명씨가 유선전화 비율을 늘리고 설문을 바꾸고 비공표 조사의 표본 값을 부풀려 윤 전 대통령에게 유리한 결과를 만들었고, 그렇게 왜곡된 조사 3건이 부부에게 직접 전달됐다는 것이다. 1심은 누군가에게 줄 것을 전제하지 않으면 굳이 결과를 왜곡할 이유가 없다며, 부부가 일방적으로 받아 보기만 한 관계가 아니었다고 판단했다.
김건희씨 항소심은 같은 정황을 반대로 읽었다. 선고 내용을 보면 이 재판부는 명씨가 부부를 만나기 전인 2021년 4월부터 이미 자기 연구소 비용으로 대선 여론조사를 정기적으로 해 언론에 공표하고 있었고, 그 이유를 연구소 영업과 홍보라고 진술했으며 이에 맞는 증거도 있다고 봤다. 표본 추출 방식이 윤 전 대통령에게 유리하게 바뀐 조사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 뒤 다른 언론사와 한 조사에서는 원래 방식으로 돌아간 경우도 있어 부부의 주문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고 했다. 결과 조작도 명씨가 부부를 만나기 전인 2021년 5월 조사에서 이미 응답자 수를 부풀린 적이 있다며 부부의 관여를 추단할 증거가 없다고 했다. 또 전달된 14건 가운데 5건은 이미 공표된 뒤에 전달됐고, 부부에게만 따로 보낸 결과는 3차례뿐이었다.
10월 7일 윤 전 대통령 항소심은 김건희씨 재판부와 같은 쪽에 섰다. 여론조사가 명씨가 운영하던 미래한국연구소 측의 전적인 판단으로 실시됐고, 그중 일부만 부부에게 전달됐으며, 명씨가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 같은 다른 정치인에게도 조사를 줬다는 것이 근거였다. 그래서 합의도, 정치자금을 주고받는다는 고의도 인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이 첫째 이유를 평가할 때 판단을 바꿀 수 있는 빈칸이 하나 있다. 보도된 선고 요지에는 윤 전 대통령 항소심이 1심의 핵심 정황, 특히 지지율 불만 뒤의 조사 조정과 왜곡 조사 전달을 어떻게 반박했는지가 나오지 않는다. 판결문이 공개됐을 때 이 재판부가 그 정황을 검토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난다면 사실 판단도 다시 따져야 한다. 그러나 같은 정황을 김건희씨 항소심이 기록 속 사실, 곧 부부를 만나기 전부터 이어진 정기 조사와 만나기 전에도 있던 응답자 수 부풀리기를 들어 하나하나 다르게 설명했다. 이 사건을 다룬 네 재판부 가운데 셋이 합의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런 기록이라면 합의가 합리적 의심 없이 증명되지 않았다는 결론은 무리한 판단이 아니다. 윤 전 대통령 변호인단이 선고 뒤 이번 판결을 두고 범죄사실은 추측이나 가능성이 아니라 증거로 증명돼야 한다는 원칙을 확인한 판결이라고 한 평가는, 이 첫째 이유에 한해서는 근거가 있다.
'정치적 조언' 법리가 문제인 이유
둘째 이유는 사정이 다르다. 항소심은 합의가 없다는 데서 멈추지 않고, 부부가 받은 것의 성격 자체를 다시 규정했다. 재판부는 부부가 받은 것이 여론 동향에 관한 정치적 조언, 유력 정치인 소개 같은 대선 준비 과정 전반의 조력이고, 명씨의 여론조사는 다른 기관 조사와 함께 그 조언의 수단이나 근거 일부로 제시됐을 뿐이어서 "명씨 측이 직접 실시한 여론조사의 결과 여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했다. 그리고 정치적 도움처럼 재산상 이익으로 환산하기 어려운 것은 정치자금법의 규율 대상이 아니다라고 했다.
이 법리는 무죄 결론에 필요하지 않았다. 김건희씨 사건의 두 재판부는 부부의 의뢰나 협의가 없었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다. 윤 전 대통령 항소심도 합의와 고의가 증명되지 않았다고 판단한 이상, 그것만으로 무죄는 나온다. 그런데도 재판부는 받은 것이 애초에 돈으로 따질 대상이 아니라는 판단을 덧붙였다.
이 법리가 굳으면 무슨 일이 생기는지는 다른 사례에 대 보면 보인다. 어떤 여론조사 업체가 특정 후보와 합의하고 그 후보를 위해 조사를 한 뒤, 결과를 공짜로 건네면서 판세 해설을 곁들인다고 해 보자. 조사 비용은 업체가 냈고 후보는 한 푼도 내지 않았다. 정치자금법 제3조로 보면 후보가 낼 비용을 제3자가 부담한 전형적인 기부다. 그런데 항소심 법리를 따르면 후보가 받은 것은 '조언'이고, 그 조언의 근거가 된 조사를 누가 돈 들여 했는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조사 결과를 조언과 함께 건네기만 하면 비용 부담이 기부에서 빠져나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조국혁신당 임명희 대변인이 현금 지급이 아니라는 이유로 무상 여론조사 같은 이익을 허용하면 정치자금법 통제가 어려워진다고 비판한 것이 이 지점이다. 기준은 실제 비용이 드는 용역을 받았는지, 그 비용을 누가 떠안았는지여야 한다. 그 용역을 어떤 말과 함께 건넸는지는 기준이 될 수 없다.
반대 방향의 우려도 있다. 윤 전 대통령 변호인단은 1심 선고 직후 이런 식이면 선거 캠프에서 전문가들이 쓰는 보고서도 정치인과 연결돼 있으면 정치자금법 위반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이 우려에 답하는 기준도 같다. 조언이나 분석 자체는 돈으로 환산하기 어렵다. 제공자가 자기 영업을 위해 해서 여러 사람에게 뿌린 조사나 이미 공표된 조사를 건네받는 것도, 받는 사람이 낼 비용을 남이 대신 낸 것이 아니다. 기부가 되는 것은 받는 사람을 위해 비용이 드는 조사를 하고 그 비용을 다른 사람이 떠안기로 한 경우다. 이 구분은 이미 하급심 판결 안에 있었다. 1심이 58회 가운데 직접 전달된 14회만 유죄로 본 것도, 김건희씨 항소심이 공표 뒤 전달된 조사와 여러 사람에게 함께 보낸 조사를 따로 센 것도 이 구분을 따진 것이다. '조언이니 돈이 아니다'라는 법리는 이 구분을 지워 버린다.
같은 재판부의 다음 사건, 그리고 대법원
이 기준을 쓰면 같은 재판부가 10월 23일 선고하는 오세훈 서울시장 사건이 어떻게 다른지도 보인다. 오 시장은 202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명씨에게서 여론조사를 받고, 후원자인 사업가 김한정씨가 그 비용 3300만원을 대신 내게 한 혐의로 기소됐다. 1심은 10건 중 5건의 의뢰와 2100만원 대납을 인정해 벌금 1000만원을 선고했다. 이 사건에서는 제3자가 실제로 돈을 냈다는 송금 기록이 있다. 특검팀도 사건 구조가 달라 이번 판결의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설명했다. 비용을 누가 냈는지가 분명한 이상 '조언이니 돈이 아니다'라는 법리는 여기서 쓸모가 없다. 다툼은 오 시장이 조사를 의뢰했거나 대납을 미리 알았느냐, 곧 윤 전 대통령 사건의 첫째 이유와 같은 종류의 증명 문제에 있다.
최종 판단은 대법원으로 간다. 김건희씨 사건은 쌍방 상고 뒤 대법원 전원합의체에 회부됐고 9월 29일 첫 심리가 열렸다. 언론은 여론조사 실시와 결과 제공이 정치자금법상 기부에 해당하는지를 이 심리의 핵심 쟁점으로 본다. 윤 전 대통령 측 채명성 변호사는 이번 판결문을 그 상고심에 제출하겠다고 했다.
전원합의체가 할 일은 두 이유를 떼어 내는 것이다. 합의가 증명됐는지는 기록을 다시 읽어 판단할 문제이고, 네 재판부 가운데 셋이 증명되지 않았다고 본 만큼 무죄 결론이 유지될 여지는 크다. 그러나 '정치적 조언과 함께 건넨 여론조사는 재산상 이익이 아니다'라는 법리는 받아들이지 말아야 한다. 무죄가 유지되더라도, 정치인을 위해 실시한 조사의 비용을 다른 사람이 떠안았다면 어떤 형태로 건네졌든 기부라는 기준을 대법원이 분명히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번 무죄는 한 사건의 증거 판단을 넘어, 돈 대신 용역으로 정치인을 돕는 길을 열어 둔 판례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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