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 경제

최태원 "전력·용수 늦어도 광주 팹 기초공사 먼저"…착공 시점은 여전히 군공항·송전망에 달렸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10월 9일 광주 군공항과 그 옆 탄약고 이전 예정지를 처음 찾았다. 이곳은 정부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새 메모리 반도체 공장(팹)을 짓기로 한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 예정지다. SK하이닉스는 SK그룹 계열의 메모리 반도체 회사다. 방문에는 곽노정 SK하이닉스 대표이사 등 경영진이 함께했다. 민형배 전남광주통합특별시장은 부지와 전력·용수·교통 준비 상황을 설명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는 전남과 광주를 함께 맡는 광역자치단체다.

최태원이 광주에서 한 말

최 회장이 취재진에게 한 말은 세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 반도체 수요가 빠르게 늘고 있다. SK하이닉스가 용인 클러스터 완공 목표를 12년 앞당겼지만 그것으로도 부족해, 필요하면 용인과 광주에서 공장을 동시에 짓겠다고 했다. 둘째, "설사 용수와 전력이 늦더라도 파일링을 빨리 맞출 수 있다면 먼저 들어가겠다"며 건설비를 아낄 생각은 없다고 했다. 파일링은 팹의 무게를 받치려고 땅에 말뚝을 박는 기초공사다. 셋째, 광주 거점은 "현재까지 용인의 3분의 2 정도 사이즈"로 계획하고 있으며, 땅과 수요가 더 있으면 더 커질 수 있다고 했다.

언제 착공하느냐는 질문에는 답하지 않았다. 최 회장은 "좀 더 스터디를 해야 하기에 오늘 답을 못 드린다"고 했다. 지자체 준비와 국가의 용수·전력 계획, 회사 공사 일정을 맞춰 다시 계산하면 곧 발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새로 정해진 날짜나 숫자는 없다. 그렇다면 이 방문으로 실제로 달라진 것은 무엇이고, 광주 팹이 언제 지어질지는 누가 정하는가.

새로 나온 것과 원래 있던 것

규모 발언부터 보면, '용인의 3분의 2'를 계획이 커졌다는 뜻으로 보기는 어렵다. 6월 29일 정부의 '3대 메가프로젝트' 국민보고회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호남에 각각 약 400조 원을 들여 메모리 팹 2기씩, 모두 4기를 짓겠다고 발표했다. 같은 날 SK하이닉스 공정공시에 적힌 투자 구상은 용인 약 600조 원, 서남권 신규 거점 약 400조 원이다. 400조 원은 600조 원의 정확히 3분의 2다. 최 회장은 이 비율이 무엇을 기준으로 한 것인지 밝히지 않았지만, 이미 공시한 금액 비율과 맞아떨어진다.

이 비율로 생산능력을 계산한 보도도 나왔다. 한국경제는 용인 팹 4기의 생산능력을 12인치 웨이퍼 기준 월 120만 장으로 보는 업계 관측에 3분의 2를 곱해, 광주에 월 80만 장 규모가 들어설 가능성을 제시했다. 회사가 밝힌 수치가 아니라 기사가 추산한 수치다.

'더 커질 수 있다'는 말에는 땅과 수요가 더 있어야 한다는 조건이 붙어 있다. 규모를 키우는 일은 회사의 결심만으로 되지도 않는다. 민형배 시장은 8월에 호남 팹이 원래 9기로 계획돼 있었다고 말한 바 있다.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은 10월 6일 국정감사에서 팹이 9기가 되면 약 14GW의 전력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지금 팹 4기를 기준으로 짠 6.3GW의 두 배가 넘는다. 규모를 키우려면 국가 전력 계획부터 다시 짜야 한다는 뜻이다.

이날 실제로 새로 나온 것은 속도에 관한 두 가지다. 하나는 용인을 다 지은 뒤가 아니라 용인과 동시에 짓겠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전력·용수를 기다리지 않고 기초공사부터 하겠다는 것이다. 6월 공시는 서남권 투자를 "단계적으로" 추진한다고만 적었다. 구체적인 일정은 이사회 승인을 거쳐 추가로 공시하겠다고 했다. 그 순서를 앞당길 뜻을 그룹 회장이 현장에서 직접 밝혔다는 점이 이번 방문의 새로운 내용이다.

왜 지금 '속도'를 말했나

최 회장이 든 이유는 수요다. SK하이닉스는 6월 용인 클러스터의 4번째 팹 건설 완료 목표를 2045년에서 2033년으로 당겼다. 최 회장은 이것으로도 늘어나는 수요를 따라가기에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가까운 시기의 공급 부족에 대해서는 회사 밖 분석도 대체로 같은 의견이다. NH투자증권 류영호 연구원은 2027년 메모리 공급 증가가 물리적으로 제한된다고 봤다. 그러나 호남의 장기 생산능력까지 필요할 만큼 수요가 이어질지는 다른 문제다. 김형준 차세대지능형반도체사업단장은 6월 발표 직전에 "현재 확정된 계획 외에 추가 투자를 진행할 만큼 앞으로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고는 누구도 담보할 수 없다"고 말했다.

회장이 직접 속도를 강조한 데는 이 사업이 처음부터 실현 가능성을 의심받아 왔다는 사정도 있다. 발표 직전 업계에서는 정부의 지역균형 발전 전략에 따른 투자라며 당혹스럽다는 반응이 나왔다. 발표 직후에는 국민의힘 등 야권이 용수·전력 부족과 정치적 외압을 문제 삼았고, 대통령과 장관, 지역 정치인들이 반박했다. 이후 넉 달 동안 국회와 언론의 질문은 '공장이 정말, 제때 지어지느냐'에 모였다. 매일경제는 이날 방문을 세간의 우려를 불식하는 데 초점을 맞춘 것으로 풀이했다. 회장이 현장에서 속도를 말한 것은 회사가 물러설 뜻이 없다는 신호다. 다만 우려가 실제로 풀렸는지는 아래의 시간표가 정한다.

2030년 6월까지의 시간표

정부와 전남광주시가 세운 목표는 다음과 같다. 2027년 상반기에 우선 부지 조성을 시작하고, 2028년 말까지 초기 전력·용수 공급을 갖춘다. 2029년에 1단계 팹을 준공한 뒤 장비 반입과 시험생산을 거쳐 2030년 6월 첫 양산에 들어간다.

이 가운데 팹 건물 공사는 오래 걸리지 않는다. SK하이닉스 용인 첫 팹은 착공부터 준공 목표까지 약 27개월이고, 대만 TSMC의 일본 구마모토 공장은 약 22개월이 걸렸다. 산업통상부 관계자도 팹 공사는 약 2년으로 보지만, 착공 시점은 부지 조성과 군공항 이전 문제 때문에 말하기 어렵다고 했다. 결국 문제는 공사 기간이 아니라 그 2년을 언제 시작할 수 있느냐다. 시작을 막는 관문은 둘이다. 공장을 세울 땅, 그리고 공장을 돌릴 전력과 용수다.

첫 번째 관문: 군공항 땅

예정지는 지금 공군 제1전투비행단이 쓰는 광주 군공항이다. 정부는 7월 이곳을 입지로 정했고, 국토교통부는 군공항 일원 약 826만㎡(약 250만 평)를 국가산업단지 후보지로 지정했다. 군공항은 결국 무안군 망운면에 새 기지를 지어 옮겨 가는데, 국방부 목표로도 새 기지는 2032년 12월에야 준공된다. 그때까지 기다릴 수 없어 정부는 전투비행단 기능을 예천·충주·서산 기지에 임시로 나눠 옮기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 군 기능 이전의 목표 시점은 2028년 중순이다.

이 날짜로는 2030년 양산을 맞추기 어렵다는 지적이 여당에서 나왔다. 정진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9월 대정부질문에서 2028년 중순 군공항이 나간 뒤 공장을 지으면 "30년에 반도체를 생산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며, 이전을 1년 이상 앞당기라고 했다. 2028년 중순부터 1단계 준공 목표인 2029년 말까지는 1년 6개월 안팎이어서 팹 공사 기간 2년에 못 미친다. 전남광주시는 국방부에 2027년 말까지 옮겨 달라고 요청했다. 이재명 대통령도 9월 29일 "2028년 중순은 늦다"며 최대한 당기도록 재검토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국방부가 일정을 실제로 얼마나 당겼는지는 아직 발표되지 않았다. 이 날짜가 광주 팹 착공 시점을 정하는 첫 번째 변수다.

정부와 시가 마련한 우회로는 '우선 개발 부지'다. 활주로와 떨어진 탄약고 이전 예정지 약 24만 평에 주변 안전구역 등을 합친 약 63만 평을 먼저 조성해, 군 기능 이전이 끝나기 전에 팹 착공을 시작한다는 구상이다. 최 회장이 이날 둘러본 곳도 이 탄약고 이전 예정지다. 시 관계자는 이곳이 군공항과 떨어져 있어 군공항이 이전하지 않더라도 최대 높이 30m의 팹을 지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우선 개발 부지에도 풀어야 할 매듭이 남아 있다. 이곳은 원래 국방부가 광주 시내 마륵동 탄약고를 옮겨 오려던 자리다. 그 이전사업에는 총사업비 3262억 원 가운데 2681억 원이 이미 투입됐다. 반도체 부지와 겹치면서 이 사업은 재검토 대상이 됐고, 탄약고를 어디로 언제 옮길지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63만 평 전부를 곧바로 팹 부지로 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산단 조성을 맡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10월 1일 조사·설계에 들어갔다. LH는 연약지반·토양오염·송전선로·공사 진입로 등을 조사하면서 먼저 공사할 수 있는 구역을 골라내도록 설계를 짰다. 산단계획은 연내에 승인을 신청해 2027년 중순 승인받는 것이 목표다.

두 번째 관문: 전력과 용수

땅이 마련돼도 팹은 전력과 용수 없이는 돌아가지 않는다. 전력은 기존 신장성–신광주 345㎸ 송전선로에서 갈라져 나오는 지중선로(땅속에 묻는 송전선로)로 끌어온다. 전남광주시가 9월에 밝힌 계획은 2027년 6월 착공해 2028년 12월 초기 3.1GW 공급체계를 갖추는 것이다. 공사 기간으로 약 18개월을 잡은 셈이다. 윤재옥 국민의힘 의원은 10월 6일 국감에서 최근 10년간 준공된 345㎸ 지중송전사업 10건이 착공부터 준공까지 평균 4년 8개월 걸렸다며 일정의 근거를 요구했다. 김성환 장관은 공사 구간을 잘게 나눠 동시에 시공하면 기간을 줄일 수 있다고 답했지만, 설계와 입지는 아직 '기본 검토 단계'라고 했다. 한국전력도 7월 국회 제출자료에서 도로를 파서 선로를 묻는 방식이 허용되지 않아 터널 방식으로 바뀌면 적기 공급이 어려울 수 있다고 했다.

용수는 하루 65만t이 필요하다. 계획은 2028년 말 하루 15만t으로 시작해 2030년 말 65만t까지 단계적으로 늘리는 것이다. 핵심 수원인 화순 동복댐은 기존 댐을 높이는 방식에서 안전 문제로 하류에 새 댐을 짓는 방식으로 검토가 바뀌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계획된 물량 일부가 기존 가뭄 대비 물량과 겹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기후부는 댐 확장과 대체공급으로 대응할 수 있다며 중복을 부인했다. 송전선로와 용수 시설은 모두 예비타당성조사를 면제받아 절차를 줄였지만, 아직 설계와 기본구상을 다듬는 단계에 있다.

선착공이 줄이는 시간과 줄이지 못하는 시간

이 구조 위에서 보면 최 회장이 말한 선착공이 어디까지 영향을 미치는지 드러난다. 파일링을 먼저 하겠다는 것은, 땅은 확보됐는데 전력·용수가 늦어지는 경우에도 회사가 손 놓고 기다리지는 않겠다는 뜻이다. 기초공사와 건물 공사를 미리 해 두면 전력과 용수가 들어오는 대로 장비를 들일 수 있다. 회사가 일정의 걸림돌이 되지는 않겠다는 약속이다.

그러나 선착공으로 줄일 수 있는 시간은 거기까지다. 파일링을 하려 해도 먼저 땅이 넘어와야 하고, 그 시점은 군 기능 이전, 탄약고 문제, 산단계획 승인에 달려 있다. 이 일정은 SK가 아니라 국방부와 정부, 전남광주시가 정한다. 또 건물을 일찍 지어도 장비를 시험 가동하고 양산하려면 전력과 용수가 들어와야 한다. 2028년 말로 잡힌 첫 전력·용수 공급이 늦어지면, 회사가 공사를 아무리 서둘러도 2030년 6월 양산은 그만큼 밀린다. 최 회장이 착공 시점을 국가의 용수·전력 계획과 "맞물리는 속도를 다시 계산"한 뒤에야 정할 수 있다고 한 것도 이 때문이다.

정리하면, 이번 방문은 적어도 회사의 의지가 광주 팹 일정의 걸림돌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만큼 일정의 무게는 공공 쪽으로 옮겨 왔다. 민형배 시장도 이날 부지·전력·용수와 인재 양성·정주 여건을 "확실하게 뒷받침하겠다"고 답했다. 그런데 지금 공공 쪽 일정은 이렇다. 군 기능 이전 날짜는 아직 2028년 중순에서 바뀌지 않았다. 송전선로는 설계·입지를 검토하는 단계이고, 동복댐은 공사 방식을 다시 짜고 있다. 2030년 6월 첫 양산이 불가능하다고 볼 근거는 없지만, 여러 공정이 한 번도 어긋나지 않아야 맞출 수 있는 빠듯한 목표다.

이 목표가 현실적인지는 앞으로 나올 세 가지 결정으로 가늠할 수 있다. 국방부가 대통령 지시에 따라 내놓을 수정 일정, 송전선로의 설계·입지 확정, 그리고 SK하이닉스와 전남광주시의 입주협약이다. 입주협약은 당초 10월에 맺을 계획이었지만 LH의 설계용역이 늦어져 12월 말이나 내년 초로 미뤄졌다. 최 회장이 "곧" 발표하겠다고 한 착공 시점도 이 일정들이 정해져야 나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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