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 경제

최태원, 광주 반도체 부지 첫 방문…"전력·용수 늦어도 먼저 짓겠다" 했지만 착공일은 미정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10월 9일 호남 반도체 산업단지 예정지인 광주 군공항을 처음 찾았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메모리 반도체 공장(팹)을 짓기로 한 곳이다. 곽노정 SK하이닉스 대표 등 경영진과 민형배 전남광주통합특별시장이 동행했다. 최 회장은 팹이 먼저 들어설 탄약고 이전 예정부지를 둘러본 뒤 "가장 빠른 속도로 최대한 짓겠다"고 말했다. 전력과 용수 공급이 늦어지더라도 "타이밍을 빨리 맞출 수만 있으면 먼저 들어가 버리겠다"고도 했다. 그러나 언제 착공하느냐는 질문에는 "좀 더 스터디를 해야 하기에 오늘 답을 못 드린다"고 답했다.

이 방문으로 'SK가 광주 투자를 용인 뒤로 미룰 것'이라는 의구심에는 총수가 직접 답을 내놨다. 하지만 착공 시점은 여전히 비어 있고, 그 시점을 정할 열쇠는 SK보다 정부 쪽에 있다. 최 회장이 기다리지 않겠다고 한 것은 전력·용수다. 공사를 시작하는 데 먼저 필요한 땅은 아직 군공항과 개발제한구역 규제에 묶여 있다.

SK의 광주 투자는 왜 의심받았나

호남 투자계획은 6월 29일 정부의 3대 메가프로젝트 국민보고회에서 공식화됐다. 이 자리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호남에 각각 약 400조 원을 들여 팹을 2기씩, 모두 4기 짓겠다고 발표했다. 7월에는 정부가 입지를 광주 군공항 부지로 정했고, 국토교통부가 약 250만 평을 국가산업단지 후보지로 지정했다. 정부와 전남광주통합특별시(전남과 광주가 통합한 광역자치단체)는 2030년 6월 첫 양산을 목표로 내걸었다.

그런데 SK하이닉스의 공식 문서에서 광주는 늘 흐릿했다. 6월 25일 미국예탁증서(ADR) 상장을 위해 낸 증권신고서의 자금 사용계획에는 용인·청주 공장과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만 있고 광주는 빠져 있었다. 6월 29일 낸 공정공시는 서남권 400조 원 투자의 시작일과 종료일을 비워 뒀다. 이 수치는 시장 상황에 따라 바뀔 수 있는 '가이드라인'이며, 구체적 일정은 이사회 승인을 거쳐 공시하겠다고 적었다. 6월 30일 투자협약에서도 삼성전자는 광주를 후보지로 밝혔지만 SK하이닉스는 '서남권'이라고만 했다. 연합뉴스는 방문 당일, 일부에서 SK가 용인 클러스터 이후로 광주 사업을 미루거나 반도체 경기에 따라 장기간 지연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다고 전했다. 다만 누가 그런 우려를 냈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최 회장의 답: 용인과 병행해서라도 짓겠다

최 회장의 이번 발언은 이 의구심을 정면으로 겨냥한다. 그는 SK하이닉스가 6월에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의 전체 완공 목표를 2045년에서 2033년으로 12년 앞당겼다는 점을 짚은 뒤 "그것만으로도 부족하다"고 했다. 이어 "필요하다면 병행을 해서라도 지어야만 할 사정이 생길 것 같다"고 말했다. 용인을 다 지은 뒤 광주로 넘어가는 순서가 아니라 두 곳을 동시에 지을 수 있다는 뜻이다. 광주 거점은 지금 용인의 3분의 2 정도 규모로 구상하고 있으며, 땅과 수요가 더 있으면 더 커질 수 있다고도 했다. "건설에 들어가는 비용을 아끼겠다는 생각은 별로 없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 발언은 정부가 8월에 내건 조건에 대한 답으로도 읽힌다.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은 8월 10일 탄약고 예정부지를 미리 정비해 "기업이 원하는 경우" 최대한 이른 시일 안에 팹을 착공할 수 있게 하겠다고 밝혔다. 기업별 투자 시기는 부지를 확보한 뒤 각 기업이 알릴 것이라고도 했다. 최 회장의 말은 SK가 그 조기 착공을 원한다는 의사 표시다. 민형배 시장은 추진 의지를 분명히 보여 줬다며 감사를 표했고, 배미경 시 대변인은 그동안의 우려가 "모두 해소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의구심이 모두 풀린 것은 아니다. 최 회장이 속도를 내는 근거는 메모리 수요 전망이다. SK하이닉스는 7월 실적 발표에서 11개 고객사와 맺은 장기공급계약을 증설 판단의 근거로 들었다. 반론도 있다. 김형준 차세대지능형반도체사업단장은 6월 기존 증설 외에 추가 투자를 뒷받침할 만큼 수요가 늘지 담보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최 회장 자신도 6월 보고회에서 지나친 공급 부족과 가격 상승이 시장을 축소시킬 우려가 공존한다고 말했다. 400조 원이 공시상 가이드라인이라는 사실도 방문 뒤 그대로다. 광주 투자의 규모와 속도는 여전히 수요를 보고 SK가 내릴 선택이다.

착공일을 정하는 것은 땅이다

최 회장이 착공일을 말하지 못한 이유는 그의 말 안에 있다. 그는 지자체 준비, 국가의 전력·용수 계획, SK의 공사 일정이 맞물리는 속도를 "다시 계산하면" 곧 발표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 셋 가운데 SK가 스스로 정할 수 있는 것은 자기 공사 일정뿐이다.

팹이 먼저 들어설 곳은 군공항 전체가 아니라 탄약고 이전 예정지·비행안전구역·유휴부지를 합친 약 63만 평이다. 군공항이 전남 무안으로 옮겨 가기를 기다리지 않고 먼저 개발하려는 우선개발 부지로, 계획상 첫 팹 2기가 여기에 들어선다. 높이 45m 미만 공사라면 전투기가 뜨는 동안에도 할 수 있는 곳이다. 하지만 대부분이 군사통제구역이고 전체가 개발제한구역이다. 그래서 국가산단 지정 전에 공사를 하려면 시장이 사전 개발행위를 조건부로 허가할 수 있는 특례가 법에 새로 생겨야 한다. 전남광주시는 이 특례를 정부에 건의한 상태다.

나머지 군공항 부지에는 더 많은 절차가 남았다. 국방부는 공군 제1전투비행단 기능을 2028년 중순까지 다른 기지에 임시로 나눠 옮기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전남광주시는 이를 2027년 말로 당겨 달라고 요청했고, 이재명 대통령도 9월 29일 일정을 최대한 앞당기라고 지시했다. 기지 안 미군 구역은 한미가 따로 협의하고 있다. 땅을 넘겨받는 방식도 바꿔야 한다. 지금은 새 군공항을 지어 국방부에 넘긴 뒤에야 옛 부지를 받는 '기부 대 양여' 방식이다. 새 기지 완공 전에 옛 부지를 먼저 넘겨받는 '선양여' 특례를 담은 특별법 개정안은 9월 21일 발의된 단계다.

산단 절차도 이제 시작이다. 사업시행자인 LH(한국토지주택공사)는 10월 1일에야 조사·설계에 착수했고, 산업단지계획 승인 목표는 2027년 중순이다. 당초 10월로 잡혔던 기업 입주협약은 이르면 12월, 늦으면 2027년 초로 미뤄졌다.

그래서 공식 일정에서 팹 착공은 2028년이다. 9월 22일 전남광주시가 내놓은 계획은 2027년 상반기 우선개발 부지 조성, 2028년 팹 2기 건축 착수, 2029년 말 완공, 2030년 6월 첫 양산 순서다. 8월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의 국무회의 보고도 2028년 군공항 부지를 인도받는 즉시 팹 건축에 들어간다고 했다. 다만 같은 8월에 2027년 팹 1기 공사를 시작한다는 보도도 나왔고, 두 설명의 차이를 정리한 발표는 아직 없다. 최 회장이 "먼저 들어가겠다"고 한 말이 2028년 착공을 2027년 쪽으로 당기겠다는 뜻인지는 SK가 착공일을 발표해야 알 수 있다.

전력·용수는 왜 기다리지 않아도 되나

전력·용수는 땅과 사정이 다르다. 땅을 돋우는 성토나 기초공사는 공급망이 완성되지 않아도 시작할 수 있다. 한국경제는 최 회장의 말을 파일링(팹 하중을 받치기 위해 땅에 말뚝을 박는 기초공사)을 먼저 시작하겠다는 뜻으로 전했다. 전력·용수가 꼭 있어야 하는 때는 팹을 돌릴 때다. 전남광주시 계획은 초기 팹 2기에 필요한 전력 3.1GW를 2028년 12월까지 공급하고, 용수는 2028년 말 하루 15만t으로 시작해 2030년 말 65만t까지 늘리는 것이다. 공사를 먼저 시작하면 기반시설과 공장 건설이 나란히 진행돼 전체 기간을 줄일 수 있다.

그렇다고 기반시설의 위험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산단까지 약 23km 지중 송전선로를 2027년 6월 착공해 18개월 만에 끝낼 수 있는지, 용수의 가장 큰 몫을 맡은 동복댐을 어떤 방식으로 키울지는 아직 다퉈지고 있다. 공장을 먼저 짓기 시작해도 2030년 6월 양산은 이 시설들이 제때 끝나야 가능하다.

공은 정부로 넘어갔다

정리하면 이번 방문은 SK가 광주를 뒷순위로 미룬다는 의구심에 총수 차원의 답을 내놨다. 용인과 병행해 짓겠다, 비용을 아끼지 않겠다, 기반시설보다 먼저 공사에 들어가겠다는 말은 6월의 '서남권 400조 원'보다 훨씬 구체적인 약속이다. 하지만 이 약속에는 "타이밍을 빨리 맞출 수만 있으면"이라는 조건이 붙어 있다. 그 타이밍을 정하는 것은 개발제한구역 사전공사 특례, 선양여 특별법, 비행단 기능 이전, 산단계획 승인이다. 모두 SK가 아니라 정부·국회·국방부가 풀어야 하는 일이다.

앞으로 볼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최 회장이 '곧' 하겠다고 한 착공일 발표다. 다른 하나는 연말이나 내년 초 입주협약에서 SK가 이사회 승인을 거친 투자 일정을 내놓는지다. 그때까지 광주 팹의 속도는 기업 의지보다 행정·군사 절차가 얼마나 빨리 움직이느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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