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 국제

트럼프 '러시아 경유 480만t 공급 합의' 발표…미국, 러시아산 경유 거래 6개월 허용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0월 9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통화했다. 통화 뒤 그는 러시아가 미국과 세계 시장에 경유를 공급하기로 합의했다고 트루스소셜에 발표했다. 러시아가 즉시 30만t 이상, 11월 중 50만t, 그 직후 100만t을 공급하고, 이어 "러시아 정유시설 상태에 따라" 300만t을 더 내놓는다는 내용이다. 국내 보도에 나온 '480만t'은 이 네 단계를 모두 더한 값이다. 마지막 300만t은 조건부이고, 공급 대상도 미국만이 아니라 세계 시장이다. 러시아에서는 에너지를 맡은 알렉산드르 노박 부총리가 10월 30만t, 11월 약 50만t, 12월 100만t을 미국과 다른 파트너에게 공급할 준비가 있다고 했다. 10월 말까지였던 경유 수출 금지를 앞당겨 풀기 시작한다고도 밝혔다.

무엇이 허용됐나

같은 날 미국 재무부 해외자산통제국(OFAC)이 일반면허 135를 발급했다. OFAC는 미국의 경제제재를 집행하면서 특정 거래를 예외로 허가하는 '면허'를 내주는 기관이다. 이 면허는 대러 제재 규정이 막아 온 러시아산 경유의 판매·운송·하역·수입 거래를 미국 수입까지 포함해 2027년 4월 7일까지 허용한다. 물량 상한이나 공급자·구매자 지정은 없다. 대신 허용 범위는 경유 거래로 한정된다. 러시아 중앙은행·국부펀드·재무부가 미국 금융기관에 둔 계좌에서 돈을 빼는 거래는 제외되고, 이란 제재처럼 다른 제재 프로그램의 금지는 그대로 남는다. 유럽연합(EU)의 러시아산 정제유 수입 금지도 유지된다. 이번 조치는 대러 제재 해제가 아니라, 러시아산 경유 거래에만 적용되는 6개월짜리 예외다.

왜 러시아 경유인가

트럼프가 러시아 경유를 찾은 이유는 미국 경유값이다. 미국 전국 평균 경유 소매가격은 9월 22일 갤런당 약 6.53달러로 최고치를 찍었고, 발표 당일에도 6.28달러였다. 1년 전에는 약 3.68달러였다. 경유는 화물 트럭과 농기계의 연료여서 값이 오르면 운송비와 식료품값이 함께 오른다. 11월 3일 중간선거를 앞두고 트럼프의 경제 분야 지지율이 최저로 떨어졌다는 AP-NORC 조사도 나왔다.

경유값을 끌어올린 데는 두 갈래 원인이 겹쳤다. 하나는 올해 초 시작된 미국과 이란의 전쟁이다. 호르무즈해협과 홍해를 지나는 수출이 막히고 중동 정유시설이 피해를 입으면서 국제 경유 공급이 줄었다. 다른 하나는 러시아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전쟁 자금줄을 끊으려고 봄부터 러시아 정유시설 공격을 늘렸다. 국내 연료난을 겪은 러시아는 7월 8일 경유 수출을 금지한 뒤 세 차례 연장했다. CNN은 이 금지로 세계 시장에서 하루 약 80만 배럴이 빠졌다고 추산했다.

트럼프의 발표는 이 두 번째 원인을 겨냥했다. 그는 농민·목장주·트럭 운전자의 가격 부담을 낮추는 것이 최우선이라고 했다. 미국의 호르무즈해협 통제와 러시아 경유가 합쳐지면 경유값이 "기록적으로, 빠르게" 내려갈 것이라고도 했다.

가격은 얼마나 내려가나

시장은 곧바로 반응했다. 뉴욕상업거래소(NYMEX)의 경유 선물가격은 발표 뒤 약 4~5% 떨어졌다. 다만 선물가격이 내렸다고 주유소 가격이 그만큼 내리는 것은 아니다.

에너지 전문가들의 전망은 트럼프의 말과 거리가 멀다. CNN은 초기 80만t(약 600만 배럴)이 미국 경유 수요의 하루 반 치라고 계산했다. 투자회사 피커링 에너지 파트너스의 댄 피커링은 연말까지 공급이 '아마' 5~6% 늘 수 있지만 시장 판도를 바꿀 규모는 아니라고 했다. 에너지정책연구재단의 마이클 린치는 러시아 경유가 미국으로 오면 기존 러시아 고객이 다른 공급처를 찾아야 하므로 물량이 자리만 바꿀 뿐이라고 했다. 컬럼비아대 에너지정책센터의 대니얼 스터노프는 러시아 수출이 실제로 재개되면 세계 가격 안정에 도움이 된다고 봤다. 그러면서도 중동 정제품 공급이 전쟁 전의 절반 수준이어서 큰 폭의 하락은 어렵다고 했다.

러시아가 약속한 물량을 낼 수 있는지도 불확실하다. 에너지 시장 분석기관 S&P Global은 9월 말 러시아 정제능력의 거의 절반이 멈춰 있어 연말까지 수출이 위기 전 수준으로 돌아오기 어렵다고 평가했다. 트럼프가 300만t에 정유시설 상태라는 조건을 붙인 것도 이 때문이다. 10월 10일까지 확인된 이행은 발표와 면허 발급, 러시아의 수출 제한 해제 착수까지다. 누가 사서 대금을 내는지, 미국에 얼마가 언제 들어오는지는 공개되지 않았고, 백악관은 이 질문에 바로 답하지 않았다. 실제 선적이 예상보다 많으면 효과는 커질 수 있다. 그러나 지금 확인된 수치로는 경유값이 '빠르고 크게' 내린다는 트럼프의 말을 뒷받침하기 어렵다.

미국이 내준 것

가격 효과가 이 정도라면, 미국이 그 대가로 무엇을 내줬는지가 더 큰 문제다. 이번 합의는 미국이 몇 주 동안 중재해 온 러시아·우크라이나 '에너지 휴전' 협상 한가운데서 나왔다. 에너지 휴전은 양측이 서로의 발전소·정유시설 같은 에너지 시설을 공격하지 않기로 하는 부분 휴전이다.

이 협상에서 각자가 원한 것은 분명했다. 트럼프는 9월 13일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러시아 경유시설 공격을 멈추라고 요구했다. 다음 날에는 양측이 서로의 에너지시설을 공격하지 않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젤렌스키는 합의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력망 공격을 실제로 멈춘다는 보장이 있어야 상응하겠다고 했다. 일방적 중단은 받아들일 수 없고, 상호 중단이라면 받겠다는 것이다. 러시아는 따로 값을 불렀다. 우크라이나 매체 Kyiv Independent는 10월 9일 미국·우크라이나 관리들을 인용해 러시아가 에너지 휴전의 대가로 제재 완화를 요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푸틴도 10월 1일 "러시아에는 경유가 충분하지만 제재 때문에 세계 시장에 나가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10월 9일 미국은 그 제재의 일부를 풀었다. 러시아가 그 대가로 무엇을 내놓았는지는 공개된 어떤 설명에도 없다. 크렘린의 유리 우샤코프 외교보좌관은 통화에서 연료 공급 등 경제협력을 논의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푸틴이 지난달 러시아 총선 투표일에 우크라이나가 모스크바를 드론으로 공격한 일을 들어 평화협상의 즉각 재개에는 응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미국이 무엇을 양보했는지, 러시아가 무엇을 약속했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발표가 나온 시각, 트럼프의 특사 스티브 위트코프와 사위 재러드 쿠슈너는 마이애미에서 우크라이나·유럽 협상단과 종전안을 논의하고 있었다.

젤렌스키의 반발은 바로 이 지점을 향한다. 그는 상호 긴장 완화 없이 러시아의 석유제품 판매를 허용하는 것은 끝내야 할 전쟁을 연장하는 투자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Axios 인터뷰에서는 겨울철 양국 에너지시설 공격 중단의 대가였다면 제재 완화를 지지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도 제재 완화를 협상 카드로 쓰는 것 자체에는 반대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가 문제 삼은 것은 그 카드가 아무 대가 없이 쓰였다는 점이다. 경유 거래는 사전 협의에 나오지 않았고, 마이애미의 우크라이나 협상단은 가림막으로 이용됐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미국 쪽에서는 다른 설명이 나온다. Axios에 말한 익명의 미국 관리는 젤렌스키가 정유시설 공격 중단 요청을 약 여섯 차례 무시한 것이 결정의 계기였다고 했다. 트럼프는 우크라이나가 일방적으로 공격을 멈추기를 원했고, 러시아 정유시설 공격과 우크라이나 전력망 공격을 같은 것으로 보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이 관리는 에너지 거래가 러시아의 평화협상 양보를 끌어내기를 기대한다고도 했다. 이 설명대로라면 이번 조치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압박이고, 러시아에게서 받을 것은 나중 일이다. 어느 설명이 맞든 지금 확인되는 결과는 같다. 러시아는 에너지 휴전의 값으로 부르던 제재 완화를 휴전 약속 없이 얻었고, 미국은 상호 휴전을 끌어낼 지렛대를 먼저 써 버렸다.

상대에 따라 달라진 기준

이번 결정은 트럼프가 다른 나라에 들이대던 기준과도 맞지 않는다. 트럼프는 2025년 9월 유엔총회에서 러시아 석유를 사는 나라들을 두고 "자기를 겨냥한 전쟁에 돈을 대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번에는 미국 정부가 러시아산 경유 거래를 허용하고 미국 수입까지 열었다.

3주 전 트럼프가 서명한 법도 반대 방향을 가리켰다. 그는 9월 18일 린지 그레이엄 대러·대이란 제재법에 서명했다. 기존 대러 제재를 법률로 굳히고, 러시아산 원유·가스를 많이 사는 나라에 최고 100% 관세를 물릴 수 있게 한 법이다. 민주당의 진 샤힌(상원 외교위원회 간사), 척 슈머(상원 원내대표), 엘리자베스 워런(상원 은행위원회 간사) 의원은 이번 조치가 우크라이나와 유럽 동맹, 미국 안보에 대한 배신이며 러시아 전쟁 수입을 끊으려는 법과 초당적 의회의 뜻에 어긋난다고 비판했다. 국무부에서 제재 정책을 맡았던 리처드 네퓨는 미국이 경제 문제를 이유로 제재를 풀면 다른 나라가 같은 핑계를 대도 막을 명분이 없다고 지적했다. 동맹국은 따라오지 않았다. 영국 정부는 대러 제재를 유지하겠다고 했고, 독일 정부는 제재 유지와 추가 제재 추진을 밝혔다.

다만 위법이라고 단정할 근거는 아직 없다. 그레이엄법은 대통령에게 제재 대상 선정과 면제에 넓은 재량을 남겼고, 재무부의 새 면허 발급 권한도 보존했다. 조지타운대 법학센터의 피터 해럴은 이번 조치가 이 법이 행정부에 대러 압박 강화를 강제하지 못한다는 점을 보여 준다고 평가했다. 다툼의 여지가 더 큰 것은 2022년 러시아산 석유 수입 중단법이다. 이 법은 경유를 포함한 러시아산 석유제품의 미국 수입을 금지하고, 금지를 끝내려면 대통령 인증과 의회 심사를 거치도록 했다. 재무부 면허로 이 금지에 임시 예외를 둘 수 있는지를 두고, 국제법 연구자 에드마버슨 산투스는 허용된다는 해석과 금지 집행만 맡겼다는 해석이 모두 가능하다고 분석했다. 법적 결론이 어떻게 나든, 의회가 막으려던 러시아의 에너지 수입을 행정부가 늘려 주었다는 사실은 남는다.

효과는 작고 대가는 컸다

이번 결정의 문제는 위법 여부보다 거래 내용에 있다. 6개월짜리 경유 예외로 미국 소비자 가격이 조금 내릴 수는 있다. 하지만 지금 나온 수치와 전문가 전망으로 보면 그 폭은 트럼프가 약속한 '기록적 하락'에 크게 못 미친다. 그 대가로 러시아는 에너지 휴전의 값으로 요구하던 제재 완화를 휴전 약속 없이 얻었다. 젤렌스키가 상호 휴전의 대가라면 받아들이겠다고 한 바로 그 카드다. 그리고 트럼프는 동맹국에 러시아 석유를 사지 말라고 하던 기준을 자국 연료값이 오르자 내려놓았다.

이 판단을 바꿀 수 있는 것은 하나다. 공개되지 않은 러시아의 약속이 있어 앞으로 에너지 휴전이나 협상 재개로 돌아온다면, 이번 조치는 익명의 미국 관리 말처럼 협상을 위한 선불이었다고 볼 여지가 생긴다. 그러나 10월 10일까지 크렘린의 발표에서 그런 신호는 찾을 수 없다. 오히려 푸틴은 협상 재개를 미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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