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러·우크라 에너지 휴전 즉시 발효" 선언…우크라는 "처음 듣는 얘기", 러시아는 확인 없이 발전소 공격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0월 11일(현지시간) 자신의 SNS 트루스소셜에 "즉시 발효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에너지 휴전이 성립했다. 양측 모두 동의했다. 깨지 말라!"라고 썼다. 에너지 휴전은 전쟁 전체를 멈추는 것이 아니다. 두 나라가 서로의 발전소·송전망·가스시설·정유시설 같은 에너지 시설만 공격하지 않기로 하는 부분 휴전이다. 게시물에는 어떤 시설이 대상인지, 언제까지인지, 누가 언제 동의했는지가 하나도 없었다.
'양측 동의'를 확인해 준 쪽은 없었다
다음 날까지 당사국들이 내놓은 말을 모아 보면, 트럼프가 말한 '양측 동의'를 확인해 준 쪽은 없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발표 직후 미국 매체 Axios와의 인터뷰에서 처음 듣는 얘기라고 했다.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이 푸틴과 협상했다면 휴전이 언제 시작되는지 알려 달라"고 되물었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우크라이나 고위 관리 두 명도 트럼프의 발표로 처음 알았다고 말했다.
러시아는 발표 당일 침묵했다. 러시아 하원 에너지위원회 제1부위원장 이고리 아난스키흐는 관련 정보를 갖고 있지 않으며 트럼프의 말이 현실과 얼마나 맞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12일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러시아 대통령실) 대변인은 트럼프의 말을 확인해 달라는 기자들에게 "접촉이 계속되고 있다. 할 말이 생기면 알리겠다"고만 답했다. 누구와 접촉하는지도 말하지 않았다. 동의도 거부도 아닌 답이다. 일부 국내 보도는 러시아가 합의를 부인했다고 전했지만, 러시아 당국자가 합의를 명시적으로 부인한 발언은 확인되지 않는다. 러시아의 태도는 부인이 아니라 확인 유보다.
미국 정부 안의 설명도 대통령의 게시물과 달랐다. Axios가 취재한 익명의 백악관 관계자는 이번 구상을 양국이 서로의 정유시설을 공격하지 않는 '정유시설 대 정유시설' 제안이라고 설명하고, 러시아가 이를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정유시설 공격이 멈추면 발전소·전력망 보호로 넓힐 수 있다고도 했다. 대통령이 '양측 동의, 즉시 발효'라고 쓴 것을 실무진은 '러시아가 아직 검토 중인 제안'으로 설명한 셈이다. 세 나라의 말을 모두 놓고 보면, 10월 11일에 성립한 에너지 휴전은 없었다.
발표 뒤에도 공격은 멈추지 않았다
전장의 움직임도 이 판단과 맞는다. 발표 몇 시간 뒤인 11일 저녁,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제2도시 하르키우의 제5열병합발전소를 공격했다. 우크라이나 대통령실은 이 공격이 트럼프의 게시물 이후에 일어났다고 확인했다. 12일 자정 무렵에는 우크라이나 국영 에너지회사 Naftogaz가 하르키우주에서 운영하는 가스 생산시설이 러시아 드론에 맞아 불이 나고 핵심 장비가 손상됐다. 젤렌스키는 이를 "트럼프 대통령이 발표한 에너지 휴전에 대한 러시아의 위반"이라고 불렀다. 그날 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정유시설을 공격하지 않았다고 젤렌스키는 밝혔다.
우크라이나는 거부하지 않았다, 막힌 곳은 러시아다
그렇다고 합의가 없었다는 것이 두 나라 모두 휴전을 거부했다는 뜻은 아니다. 우크라이나는 미리 몰랐다고 했을 뿐 휴전 자체에는 찬성했다. 젤렌스키는 같은 인터뷰에서 "러시아가 에너지 휴전에 동의하면 우크라이나도 동의한다"고 했다. 그날 밤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 알렉산데르 스투브 핀란드 대통령, 마르크 뤼터 NATO 사무총장과 통화하면서는 휴전을 지지하지만 러시아의 답과 실제 공격 중단을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의 조건은 9월부터 바뀌지 않았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력망 공격을 멈추면 우크라이나도 러시아 정유시설 공격을 멈춘다는 상호 중단이다.
반면 러시아는 공개적으로 이 구상에 부정적이었다. 페스코프는 발표 사흘 전인 10월 8일 에너지 같은 부문별 휴전은 협상할 실익이 없다며, 에너지는 우크라이나의 약점이라 우크라이나가 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비공개 협상에서는 사정이 조금 달랐다는 보도가 있다. Kyiv Independent가 취재한 미국·우크라이나 관리들은 러시아가 에너지 휴전을 검토할 뜻은 내비쳤지만 미국의 제재 완화, 흑해 휴전과 함께 묶으려 했다고 전했다. 러시아가 에너지 휴전을 다른 대가와 맞바꾸려 한다면, 러시아가 동의했다는 미국의 말에는 그 대가가 무엇인지도 따라붙어야 한다. 백악관은 어떤 경로로 동의를 얻었는지 묻는 CNN에 대통령 게시물을 다시 안내했을 뿐이다.
왜 먼저 발표했나: 미국의 경유값
그렇다면 트럼프는 왜 성립하지 않은 합의를 성립했다고 발표했을까. 발표 직전 사흘 동안 미국과 우크라이나 사이에 벌어진 일이 그 답을 가장 잘 설명한다.
출발점은 미국의 경유값이다. 미국 경유 소매가격은 9월 22일 갤런당 약 6.53달러로 정점을 찍었고, 10월 8일에도 약 6.28달러였다. 2월 28일 미국·이스라엘이 이란과 전쟁을 시작하기 전보다 약 70% 높은 값이다. 이란 전쟁으로 중동의 경유 공급이 막힌 데다, 우크라이나의 드론 공격으로 정유량이 줄어든 러시아가 경유 수출을 금지하면서 세계적인 경유 부족이 생겼다. 11월 3일 중간선거를 앞둔 트럼프와 공화당에 경유값은 큰 부담이다.
트럼프는 이 부담의 책임을 우크라이나에 돌려 왔다. 10월 10일 그는 기자들에게 젤렌스키를 두고 "원하는 건 하라, 정유시설은 치지 마라, 표적은 많다고 했는데 그는 가서 쳤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가 미국 농민과 목장주에게 경유 문제를 일으킨다고도 했다. 익명의 미국 관리는 Axios에 우크라이나가 약 여섯 차례 정유시설 공격 중단 요청에 응하지 않은 것이 경유 거래 결정의 계기였다고 설명했다. 같은 관리는 트럼프가 우크라이나의 일방적 공격 중단을 원했다고도 했다.
여기서 말한 경유 거래는 10월 9일 나온 미국·러시아 합의다. 트럼프는 그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통화한 뒤 러시아가 미국과 세계 시장에 경유를 즉시 30만t 이상, 11월 50만t, 그 직후 100만t 공급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같은 날 미국 재무부 해외자산통제국(OFAC)은 일반면허 135를 내 제재로 막혀 있던 러시아산 경유 거래를 2027년 4월 7일까지 허용했다. 미국이 우크라이나·유럽 대표단과 마이애미에서 종전안을 논의하던 날이었다. 젤렌스키는 이 거래가 사전 협의에 없었다며 반발했다. 이튿날 트럼프는 우크라이나에 "합의를 할 수 있는 새 지도자"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젤렌스키는 11일 ABC 인터뷰에서 60일간 전면 휴전을 보장하면 선거를 치르겠다고 답했다. 우크라이나는 법으로 계엄 중에는 선거를 치를 수 없다. 페스코프는 12일 이 제안을 두고 일시적 휴전이 아니라 장기적 평화를 원한다며 거부했다.
에너지 휴전 발표는 이 공방 한가운데에서 나왔다. 젤렌스키의 ABC 인터뷰가 방송된 지 한 시간도 안 됐을 때다. 트럼프가 원한 것은 우크라이나의 러시아 정유시설 공격 중단이었다. 이 흐름에서 보면 '즉시 발효, 깨지 말라'는 발표는 중재가 끝났다는 보고라기보다, 우크라이나에 정유시설 공격을 멈추라는 압박을 합의라는 형태로 바꾼 것에 가깝다.
정유시설부터 멈추면 누가 묶이나
이 해석은 백악관이 설명한 휴전의 순서에서도 확인된다. '정유시설 대 정유시설'은 겉으로는 대칭이지만 두 나라에 같은 무게가 아니다. 우크라이나에는 정유시설이 한 곳만 남았고 그마저 러시아 공습으로 생산이 줄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지킬 것이 거의 없다는 뜻이다. 반면 러시아는 정유시설이 많고, 우크라이나 국방부는 그 정유 능력의 51%를 무력화했다고 주장한다. 러시아가 주로 노려 온 것은 우크라이나의 발전·송전 시설이다. 젤렌스키는 11일까지 한 주 동안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발전·송전 시설을 200차례 넘게 공격했다고 집계했다. 수도 키이우는 10월 8일 공격 뒤 정전과 교통 마비를 겪었고, 11일 아침에는 정해진 순환 정전표도 지킬 수 없는 긴급 정전에 들어갔다.
그래서 정유시설만 먼저 보호하는 휴전은 사실상 우크라이나의 공격 수단만 묶는다. 겨울을 앞둔 러시아의 전력망 공격은 '나중에 넓힐 수 있는 대상'으로 남는다. 에디스코완대 국방·전략연구 선임연구원 알렉세이 무라비예프는 이 경우 우크라이나만 일방적으로 공격을 멈추는 셈이라고 분석했다. 앞의 미국 관리도 트럼프가 러시아 정유시설 공격과 우크라이나 전력망 공격을 동등하게 보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 순서는 미국의 경유값 문제를 먼저 푸는 데 맞춰져 있다. 우크라이나가 전력망 보호를 함께 요구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 달 전에도 같은 발표가 있었다
이런 발표는 처음이 아니다. 트럼프는 9월 14일에도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에너지 시설을 치지 않기로 했고, 러시아도 그러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어느 쪽도 그런 합의를 확인하지 않았고 공격은 이어졌다.
실제로 합의가 있었던 경우에도 결과는 비슷했다. 2025년 3월 푸틴은 미국이 제안한 전면 휴전을 받아들이지 않는 대신 에너지 시설 공격 30일 중단에 동의했다. 크렘린은 정유시설부터 발전·송전 시설, 원전까지 보호 대상 목록과 3월 18일부터 30일이라는 기간을 공개했다. 그런데도 우크라이나는 시작일을 3월 25일로 보고 러시아가 30차례 넘게 위반했다고 주장했고, 크렘린은 4월 18일 기간이 끝났다고 선언했다. 2026년 1월 말의 일시 중단도 러시아는 2월 1일까지라고, 우크라이나는 1월 30일부터 일주일이라고 서로 다르게 설명했다. 2월 3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에너지 시설을 대규모로 공격하자 트럼프는 약속이 이미 만료됐다고 했다. 대상과 기간을 공개한 합의조차 해석 다툼 끝에 무너졌다. 이번 발표에는 그 대상과 기간조차 없다.
휴전은 아직 없다
지금 확인된 사실로 답하면, 10월 11일 트럼프가 발표한 에너지 휴전은 성립하지 않았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가 전력망 공격을 멈춘다는 조건이면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다. 러시아는 동의를 확인하지 않은 채 제재 완화 같은 대가를 따져 왔다. 백악관 실무진은 이를 러시아가 검토 중인 제안이라고 설명한다. 트럼프는 자기 정부 실무진도 '제안'이라고 부른 것을 '양측이 동의한 합의'로 발표했다. 합의가 없었으니 그 발표가 발전소 공격을 막지 못한 것도 놀랄 일이 아니다.
이 판단이 바뀌려면 세 가지가 필요하다. 러시아가 동의를 공개적으로 확인해야 하고, 보호 대상에 우크라이나의 발전·송전 시설이 들어가야 하며, 시작일과 기간이 정해져야 한다. 페스코프의 말대로 접촉은 이어지고 있으니 그런 합의가 나올 가능성은 남아 있다. 그때까지 '에너지 휴전'은 전선에서 일어난 일로 볼 수 없다. 경유값에 쫓기는 미국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 정유시설 공격을 멈추라고 요구하는 방식으로 읽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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