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중순 서울 30.1도·대전 31.5도…남쪽 더운 바람이 만든 기록, 비 그친 뒤 14일 아침 5~10도 '뚝'
10월 12일 월요일, 전국 대부분 지역의 낮 기온이 30도 안팎까지 올랐다. 이맘때 평년 낮 최고기온은 20~24도다. 평년보다 6~10도 더웠던 셈이다. 기상청이 이날 오후 5시 30분에 낸 기상정보에 따르면 오후 5시까지 서울의 낮 최고기온은 30.1도, 대전은 31.5도였다. 정읍 31.1도, 청주 30.6도, 구미 30.0도 등 여러 지점도 10월 일최고기온 1위에 올랐다. 서울은 하루 전인 11일에도 29.6도까지 올랐다. 다만 이 값들은 오후 5시까지 집계한 것이고, 기상청은 이후 기온이 더 오르면 바뀔 수 있다고 밝혔다.
10월 중순에 찾아온 30도
서울은 '동률 1위', 대전은 '경신'
'서울 119년 만의 최고'라는 표현은 따져 볼 필요가 있다. 119년은 서울에서 근대 기상관측이 시작된 1907년 10월 1일부터 센 기간이다. 그런데 이번 30.1도는 1913년 10월 3일에 기록된 값과 같다. 종전 기록을 넘은 것이 아니라 같은 값을 낸 것이다. 그런데도 1위가 된 것은 기상청 통계지침이 같은 극값이 둘 이상이면 최근 날짜를 순위의 앞에 두도록 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전은 실제로 기록을 넘었다. 31.5도는 2021년 10월 3일의 종전 최고 31.2도보다 0.3도 높다. 다만 대전의 기온 통계는 1969년부터 쌓였기 때문에 서울보다 비교 기간이 훨씬 짧다. 다른 지점도 두 갈래로 나뉜다. 영월·원주·정읍·상주는 종전 값을 넘었고, 이천·춘천·청주·구미·안동은 종전 값과 같아 1위가 됐다. 춘천이 이번에 같은 값을 낸 종전 기록은 바로 전날인 11일의 28.8도였다.
그렇다고 서울의 동률이 덜 이례적인 것은 아니다. SBS 정구희 기자가 짚었듯 1913년 기록은 10월 초순에 나왔고, 이번 기록은 그보다 늦은 중순에 나왔다. 대전 등은 실제로 기록을 넘었고 서울은 같은 값을 냈다고 구분하면 정확하다. 그 차이를 감안해도 이번 더위는 관측 이래 10월에 겪어 본 가장 높은 수준이었다.
동쪽 고기압과 서쪽 저기압 사이로 밀려온 남쪽 공기
기상청은 이 더위의 원인을 한반도 주변의 기압 배치에서 찾았다. 기상청 발표문은 동해 북부 해상에 있는 고기압의 가장자리에서 남동풍이 불고 낮 동안 햇볕이 더해졌다고 설명했다. 우진규 기상청 통보관은 경향신문에 이 과정을 두 단계로 풀었다. 11일부터 한국 동쪽 고기압의 영향으로 따뜻한 남풍이 불었고, 12일에는 서쪽에서 저기압이 다가오면서 남쪽 공기를 끌어올리는 힘이 더 세졌다는 것이다. 동쪽의 고기압과 서쪽의 저기압 사이로 남쪽의 덥고 습한 공기가 빨려 올라온 구조다. SBS 정구희 기자도 제주도 쪽 저기압 주변의 반시계 방향 흐름이 남동풍을 만들어 덥고 습한 남쪽 공기를 한반도로 밀어 올렸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산맥을 넘은 바람이 더해졌다. 정구희 기자는 동해상 고기압 쪽에서 불어온 동풍이 산맥을 타고 넘으며 데워진 공기를 서쪽으로 불어 넣었다고 분석했다. 이날 기록의 분포가 이 설명과 맞는다. 30도를 넘은 대전·전주·정읍·청주는 모두 태백산맥 서쪽이었고, 산맥 동쪽의 강릉은 오후 5시까지 24.3도에 그쳤다.
'태풍 영향'은 확인되지 않는다
이번 고온을 다룬 대표 보도 가운데 KBS 기사는 제목에서 더위를 '태풍 영향'으로 소개했다. 하지만 기상청 발표와 통보관 설명, 원인을 다룬 다른 보도 어디에도 태풍은 원인으로 나오지 않는다. 당시 북서태평양에는 제28호 태풍 놀로와 제29호 태풍 고구마가 있었다. 10월 7일 전자신문은 고구마가 일본 남동쪽 먼 바다로 향하고, 놀로는 12일께 온대저기압으로 바뀔 것이라고 전했다. 12일 밤 9시 기상청 태풍정보에 잡힌 태풍은 일본 도쿄 동남동쪽 약 950km 바다에서 북북동쪽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태풍과 이번 날씨를 연결한 기록은 10월 8일 연합뉴스 기사에서 확인된다. 이 기사는 두 태풍이 우리나라 고기압을 빠져나갈 때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썼다. 그러나 이 문장은 12~13일 비의 양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맥락에서 나온 전망이었고, 고온을 설명한 것이 아니었다. KBS 본문을 확인하지 못해 KBS가 어떤 근거로 태풍과 더위를 연결했는지는 알 수 없다. 멀리 있는 태풍이 기압 배치에 간접적으로 관여했을 가능성까지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지금 확인된 자료로 이번 더위를 설명하는 것은 한반도 동쪽 고기압과 서쪽 저기압 사이로 밀려온 남쪽 공기, 햇볕, 산맥을 넘은 바람이다.
기후변화와는 어떻게 이어지나
이례적인 더위는 계절에 대한 걱정으로 이어졌다. 채널A 인터뷰에서 서울 광진구 주민 박승요·김수연 씨는 "급하게 겨울옷 꺼내 입는 것도 좀 걱정되고, 가을 없어지는 건 아닐까"라고 말했다. 이 더위가 기후변화 때문인지에 대해 확인된 자료가 말해 주는 것은 제한적이다. SBS 정구희 기자는 바람이 불어오는 남해의 수온이 평년보다 2도, 동해의 수온이 3도 높은 것이 영향을 줬다고 분석했다. 이데일리는 지구온난화가 가을철 고온이 나타날 가능성을 키우지만, 특정 날짜의 기록을 기후변화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고 짚었다. 이날 더위를 직접 일으킨 것은 기압 배치였다. 평년보다 따뜻한 바다는 그 바람을 더 덥게 만든 바탕 조건으로 거론된다. 이번 더위에 기후변화가 얼마나 기여했는지를 수치로 따진 분석은 아직 없다.
비가 지나가면 바람이 바뀐다
더위를 끝내는 것도 서쪽에서 다가온 같은 저기압이다. 저기압이 한반도를 지나면서 12일 제주와 전라권에서 시작된 비가 늦은 밤 수도권·충청 등으로 번지고, 13일 낮에 대부분 그친다. 기상청의 12일 오후 5시 예보에서 12~13일 예상 강수량은 수도권·충청 10~50mm, 광주·전남 5~50mm, 제주 10~60mm(산지 많은 곳 80mm 이상)다. 제주 산지에는 이미 12일 오전 호우주의보가 내려졌다가 오후 2시에 모두 해제됐고, 한라산 성판악에는 오후 3시까지 126mm가 내렸다.
기온을 끌어내리는 것은 비 자체보다 비가 그친 뒤의 바람이다. MBC 기상 보도에 따르면 저기압이 동쪽으로 빠져나가는 13일 낮부터 바람이 북서풍으로 바뀌고 북쪽의 찬 공기가 한반도로 내려온다. 남쪽 공기를 끌어올리던 흐름이 반대 방향으로 바뀌는 것이다. 기상청은 14일 아침 기온이 13일 아침보다 5~10도 낮은 5~14도, 낮 최고기온은 17~22도가 될 것으로 예보했다. 바람이 강해 체감온도는 더 낮고, 낮과 밤의 기온차는 15도 안팎으로 벌어진다. 채널A는 서울 아침 기온이 12일 약 20도에서 14일 9도로 떨어져 올가을 들어 가장 낮을 것으로 전했다. 15일 아침은 4~12도로 더 내려간다.
보도마다 '10도가 떨어진다'는 말이 나오지만 비교하는 대상은 서로 다르다. 기상청 예보의 5~10도 하락은 14일 아침을 13일 아침과 비교한 값이다. YTN은 13일 낮 기온이 12일보다 최대 10도가량 낮다고 전했다. 서울을 기준으로 보면 12일 낮 30.1도에서 14일 아침 9도로, 이틀 만에 20도 넘게 내려가는 셈이다.
정리하면
12일의 더위는 한반도 동쪽 고기압과 서쪽 저기압 사이로 남쪽의 덥고 습한 공기가 밀려 올라오고, 햇볕과 산맥을 넘은 바람이 더해져 생겼다. 서울의 30.1도는 1913년 기록과 같은 값이고, 대전·영월·원주·정읍·상주는 종전 기록을 실제로 넘었다. 원인으로 널리 소개된 '태풍 영향'은 확인된 기록으로 뒷받침되지 않는다. 더위를 불러온 저기압이 지나가면 바람이 북서풍으로 바뀌어 14일 아침부터 쌀쌀해진다. 기상청은 기온이 급격히 변하는 만큼 건강관리에 유의하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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