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 경제

미국 물가·AI 빚 우려에 코스피 7.6% 폭락, 서킷브레이커 발동…한국은 왜 대만의 두 배로 떨어졌나

10월 15일 코스피는 전날보다 5.59% 낮은 5673.01로 문을 열었다. 개장 몇 분 뒤 코스피와 코스닥에서 차례로 매도 사이드카가 발동됐다. 사이드카는 선물 가격이 급락할 때 컴퓨터 프로그램이 자동으로 내는 매도 주문의 효력을 5분간 멈추는 장치다. 그래도 낙폭은 줄지 않았다. 낮 12시23분에는 코스닥이 전날보다 8.01% 낮은 757.88, 12시38분에는 코스피가 8.00% 낮은 5528.05까지 떨어졌다. 그러자 한국거래소는 두 시장에 차례로 1단계 서킷브레이커를 발동했다. 지수가 전날보다 8% 넘게 떨어진 상태가 1분 이어지면 그 시장의 매매를 20분간 멈추는 제도다. 거래가 재개된 뒤에도 하락은 이어져 코스피는 7.57% 내린 5554.22, 코스닥은 7.65% 내린 760.82로 마감했다. 두 시장의 시가총액은 하루 만에 약 410조원 줄었다.

두 시장이 차례로 멈춘 날

이런 하루는 올해 처음이 아니다. 1단계 서킷브레이커는 1998년 도입 뒤 2025년까지 16번 발동됐는데, 올해는 이날까지 15번 발동됐다. 코스피는 6월 22일 종가 9114.55로 사상 최고치를 찍은 뒤 7월 한 달에만 22% 넘게 떨어졌다. 10월에는 2일 7003.74에서 출발해 다시 7거래일 연속 내렸다. 15일 종가는 6월 고점보다 약 39% 낮다.

방아쇠는 미국 물가, 불안이 번진 곳은 AI 기업의 빚

급락의 출발점은 전날 밤 미국에서 나온 물가 지표였다. 한국시간 14일 밤 9시30분 미국 노동통계국은 9월 소비자물가가 1년 전보다 3.7% 올랐다고 발표했다. 시장 전망 3.6%와 8월 상승률 3.4%를 모두 웃돈 수치다. 물가가 다시 오르면 미국 중앙은행이 금리를 더 올릴 수 있다. 선물시장이 반영한 10월 금리 인상 확률은 하루 전 22.1%에서 이날 장 초반 51.5%까지 뛰었다.

금리 걱정은 빚을 내 데이터센터를 짓는 AI 기업으로 옮겨 붙었다. 금리가 오르면 이런 기업은 돈을 빌리는 비용이 커지고, 이익이 적은 기업일수록 먼저 타격을 받는다. 대표 사례가 코어위브다. 코어위브는 AI 연산용 서버를 빌려주는 미국 기업으로, 설비투자 자금을 주로 빚으로 조달한다. 이 회사가 6월 연 9.625% 수익률로 발행한 채권은 14일 시장에서 약 15% 수익률에 거래됐다. 채권 수익률이 올랐다는 것은 이 회사에 돈을 빌려주는 투자자들이 더 높은 이자를 요구하게 됐다는 뜻이다. 이날 코어위브 주가도 약 15% 떨어졌다. 마이크 인트레이터 코어위브 최고경영자는 직원들에게 보낸 메모에서 수주잔고가 채무를 충분히 뒷받침한다며 시장이 비합리적으로 움직인다고 반박했다. 미국 나스닥지수는 1.88%, 반도체 기업들로 구성된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는 4.3% 떨어졌다.

AI 투자가 결국 돈을 벌 수 있느냐는 의문도 겹쳤다. 시장조사기관 가트너는 2026~2030년 AI 인프라에 약 7조달러가 투자되더라도 관련 매출은 최대 3조6000억달러에 그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국시간 15일 오전에는 생성형 AI 기업 앤트로픽이 기업공개를 앞둔 투자자 설명회에서 3분기 매출 168억달러를 밝혔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전분기보다 약 45% 늘었지만 2분기 증가율 140%대보다는 크게 느려진 수치다. 김석환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코어위브 회사채 금리 급등에 더해 앤트로픽 매출 성장세 둔화가 확인되면서 AI 산업의 수익성과 투자 지속 가능성에 대한 의구심이 커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이는 사전 전망치에 못 미친 실적이 아니라 성장 속도가 느려졌다는 해석이다. 설명회에 참석한 투자자 일부는 오히려 성장 경로를 낙관했다.

같은 충격, 두 배의 낙폭

이 충격은 아시아 증시 전체에 미쳤지만 크기는 나라마다 달랐다. 15일 일본 증시는 4.90%, 대만 증시는 3.41% 떨어졌고, 홍콩 항셍지수는 오후 3시50분 기준 1.42% 내렸다. 코스피의 7.57%는 대만의 두 배가 넘는다. 충격이 같았다면 차이는 그 충격을 받은 한국 시장 쪽에 있다.

차이를 가른 첫 번째 조건은 한국 증시가 메모리 반도체에 쏠려 있다는 점이다. 이날 삼성전자는 9.48%, SK하이닉스는 11.06% 떨어졌다. 두 회사는 데이터를 저장하는 메모리 반도체가 주력이고, 두 종목의 시가총액은 마감 기준 코스피 전체의 46.92%를 차지한다. 대만 증시도 반도체 비중이 크다. 그런데 반도체 위탁생산 기업 TSMC는 2.01% 떨어지는 데 그친 반면, 대만 메모리 업체 난야는 9.47% 떨어졌다. 김정호 KAIST 교수는 "AI 펀더멘털이 훼손됐다면 엔비디아나 AMD·TSMC의 주가가 무너졌어야 하지만 이들은 괜찮다. 위험 요인이 메모리에만 집중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등 국내 보도는 AI 투자가 계속될지에 대한 우려가 메모리 업황 우려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이틀 전인 13일에도 중국 D램 업체 창신메모리(CXMT)가 연내 서버용 D램 출시 계획을 내놓자 코스피가 5.46% 떨어졌다. 메모리 업황에 대한 걱정이 생길 때마다 지수 전체가 흔들리는 구조다.

받아줄 돈은 줄고, 빚은 다시 늘었다

두 번째 조건은 외국인이 팔 때 받아줄 국내 매수 여력이 약해졌다는 점이다. 외국인은 15일까지 8거래일 연속 코스피에서 순매도했고, 이날 정규장에서만 3조6341억원어치를 팔았다. 개인과 기관이 사들였지만 하락을 막지 못했다. 이종형 키움증권 리서치센터장은 국내 매수 여력 약화를 이유로 든다. 연합뉴스는 그 배경으로 7월 급락의 후유증을 짚었다. 그때 주식을 산 개인 상당수가 아직 손실을 보고 있고, 연기금 등 기관도 매수 여력이 제한돼 외국인이 물량을 내놓을 때마다 시장이 크게 흔들린다는 것이다. 숫자도 이 설명과 맞는다. 주식을 사려고 증권사 계좌에 넣어 둔 투자자예탁금은 8월 4일 110조4100억원에서 10월 14일 97조4280억원으로 줄었다. 회사가 자기 주식을 사들이는 자사주 매입도 끝나 가고 있다. 삼성전자는 10월 6일 자사주 매수를 마쳤고, SK하이닉스의 매입도 막바지다.

세 번째 조건은 빚이다. 증권사에서 돈을 빌려 주식을 산 신용융자 잔고는 6월 24일 38조6328억원으로 정점을 찍은 뒤, 7월 폭락을 거치며 8월 4일 27조4038억원까지 줄었다. 그런데 두 달 만에 다시 불어나 10월 13일 34조2528억원에 이르렀다. 빌린 돈으로 산 주식은 값이 떨어져 담보가치가 기준 아래로 내려가면 투자자가 추가 담보를 내야 한다. 내지 못하면 증권사가 주식을 강제로 판다. 이것이 반대매매다. 매수 대금 일부만 내고 이틀 안에 잔금을 치르는 미수거래에서 생긴 반대매매는 12일 270억원, 13일 594억원, 14일 893억원으로 늘어 7월 31일 이후 가장 많았다. 15일 급락의 영향은 아직 이 집계에 잡히지 않았다. 강제 매도는 주가를 더 떨어뜨리고, 떨어진 주가는 다시 다른 계좌의 담보 부족을 부른다. 이민환 인하대 교수는 이런 악순환이 이어지면 하락세가 길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세 조건이 15일 낙폭을 각각 얼마나 키웠는지 계량한 자료는 아직 없다. 그러나 미국에서 온 같은 충격에 한국이 대만의 두 배 넘게 떨어진 결과는 충격의 크기보다 그 충격을 받은 한국 시장의 상태로 가장 잘 설명된다.

금융위의 진단은 "과도한 반응"

급락 당일 오후 2시30분 금융위원회는 이억원 위원장 주재로 증시상황 긴급 점검회의를 열었다. 금융위원회는 금융정책을 맡는 정부 기관이고, 회의에는 금융감독원·한국거래소 등 유관기관과 증권사 리서치센터장들이 참석했다. 금융위 발표에 따르면 참석자들은 금리 상승 전망, AI 반도체의 투자·수익 불확실성, 국제유가 상승으로 변동성이 커졌다고 봤다. 그러면서도 "하락 속도와 수급 측면에서 과도하게 반응한 측면이 있다"고 평가했다. 반도체·방산·조선의 실적과 외환보유액·경상수지 같은 경제 기초체력은 견조하다고도 했다.

대응은 세 가지로 정리됐다. 당국과 유관기관이 시장과 수급을 함께 점검한다. 허위 풍문·시세조종·불법 공매도에는 무관용으로 대응한다. 비상계획은 필요하면 신속히 시행할 수 있게 미리 준비한다. 이억원 위원장은 "과도한 부채와 신용에 의존한 투자는 위험하며 이럴 때일수록 리스크 관리가 중요하다"며 금융회사들에 "무분별한 신용공여를 자제"해 달라고 당부했다. 신용공여는 증권사가 투자자에게 주식 살 돈을 빌려주는 것을 말한다. 비상계획에 어떤 수단이 들어 있는지, 언제 발동하는지는 공개되지 않았다.

빚을 실제로 묶는 장치는 업계가 먼저 마련해 둔 상태다. 금융투자협회와 대형 증권사 10곳은 10월 1일부터 신용공여 잔액을 자기자본의 90% 이내로 관리하고 있다. 19일부터는 한 종목의 신용융자가 증권사 전체 신용융자의 15%를 넘으면 신규 대출 한도를 줄인다. 메리츠증권은 이 기준에 따라 19일부터 삼성전자·SK하이닉스를 새로 신용으로 사는 것을 막는다고 고객에게 안내했다.

과도한 반응을 만든 조건은 그대로다

'과도한 반응'이라는 진단에는 근거가 있다. 이준서 동국대 교수도 AI 수익성이 실제로 나빠졌거나 반도체 기업의 이익 전망이 내려간 것이 아니라, 앞으로 그럴 수 있다는 우려에 시장이 과민하게 반응하고 있다고 봤다. 반도체 기업의 실적이 실제로 꺾였다는 자료는 아직 없다.

그러나 견조한 실적은 이번에도 주가를 받치지 못했다. 삼성전자가 분기 영업이익 107조4000억원이라는 사상 최대 잠정실적을 발표한 10월 8일에도 주가는 2.42% 떨어졌다. 지금 한국 증시를 움직이는 것은 현재 실적보다 AI 투자가 계속될지에 대한 기대다. 그리고 그 기대가 흔들릴 때 쏟아지는 매물을 누가 받아 주느냐가 낙폭을 정한다. 매물을 키우는 조건, 곧 두 종목 쏠림과 얇아진 매수 기반과 다시 쌓인 빚은 7월 폭락 때 이미 드러났다. 7월 28일에도 외국인이 약 5조원을 팔고 빚을 낸 투자자들의 청산 매물이 겹치면서 코스피가 하루에 10.84% 떨어졌다.

15일 급락은 미국 물가가 계기였다. 하지만 낙폭의 크기는 7월 이후 해소되지 않은 한국 시장의 구조가 만들었다고 보는 것이 가장 설명력이 높다. 금융위는 이 상황을 불안심리 확산과 쏠림으로 진단하고 투자자에게 합리적 판단을 당부했다. 그런데 이날 나온 대응 가운데 그 구조에 직접 닿는 것은 신용공여 자제 당부 하나이고, 그마저 권고다. 빚을 실제로 줄이는 효과는 업계의 자율 기준이 19일부터 적용된 뒤에야 확인할 수 있다. 앞으로 이 판단을 바꿀 정보는 세 가지다. 15일 급락이 반영된 반대매매 규모, 19일 이후 신용융자 잔고의 변화, 그리고 금융위가 준비한다는 비상계획의 실제 내용이다. 그 전까지 한국 증시는 미국발 악재 하나에도 이웃 시장의 두 배로 흔들릴 수 있는 상태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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