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검, '평양 무인기' 항소심서 윤석열·김용현 징역 30년 구형…12월 4일 선고
내란특검은 16일 서울고등법원 형사1부 심리로 열린 '평양 무인기 사건' 항소심 결심공판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에게 각각 징역 30년을 구형했다. 여인형 전 국군방첩사령관에게는 징역 20년, 김용대 전 드론작전사령관에게는 징역 5년을 요청했다. 구형은 검사가 재판부에 요청하는 형량이고, 판결이 아니다. 재판부는 이날 변론을 끝내고 12월 4일 오후 3시에 선고하기로 했다.
1심 형량을 유지해 달라는 요청
윤석열·김용현에게 구형된 30년은 지난 6월 1심이 이미 선고한 형량이다. 그러니 이번 구형은 1심 판단을 그대로 유지해 달라는 뜻이고, 항소심이 답해야 할 질문도 1심 때와 같다. 2024년 가을 평양에 무인기를 보낸 작전이 비상계엄의 명분을 만들기 위한 것이었는가, 그리고 윤석열이 그 작전을 승인했는가. 두 질문에 대해 지금까지 나온 기록이 어느 쪽을 더 뒷받침하는지 보려면, 먼저 작전이 어떤 상황에서 벌어졌는지부터 알아야 한다.
오물풍선과 확성기, 그리고 평양 상공의 무인기
2024년 남북은 이미 서로를 자극하고 있었다. 북한은 남측 민간단체의 대북전단에 맞선다며 5월 28일부터 대남 오물풍선을 날려 보냈다. 정부는 6월 4일 9·19 군사합의 전체의 효력을 정지했고, 군은 6월 9일 약 6년 만에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해 7월에는 모든 전선으로 넓혔다. 9월 23일까지 오물풍선은 22차례 약 5500개에 이르렀고, 합동참모본부(합참)는 "선을 넘었다고 판단되면 단호한 군사적 조치를 하겠다"고 공개 경고했다.
드론작전사령부가 평양 상공에 무인기를 보내 전단을 뿌린 작전은 이런 상황 속인 2024년 10~11월에 이뤄졌다. 특검은 작전이 모두 9차례였다고 제시했다. 북한은 10월 11일 남측 무인기가 평양에 침투했다고 발표했다. 이튿날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은 다시 침투하면 보복하겠다고 경고했고, 북한 매체는 전방 8개 포병여단에 사격 대기를 지시했다고 밝혔다. 북한 발표가 나온 날 김용현 당시 국방부 장관은 국회에서 평양에 무인기를 보낸 적이 없다고 답했다가 '확인해 줄 수 없다'는 입장으로 바꾸고, 북한 내부 소행일 가능성까지 언급했다. 그리고 12월 3일 윤석열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특검이 세운 구도와 일반이적죄
계엄 사태를 수사한 내란특검은 2025년 11월 10일 윤석열·김용현·여인형을 일반이적과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로 기소했다. 일반이적은 형법 제99조가 정한 외환의 죄로, 대한민국의 군사상 이익을 해친 사람을 무기 또는 3년 이상의 징역으로 처벌한다. 적과 내통했는지는 요건이 아니다. 특검의 구도는 이렇다. 계엄을 선포하려면 전시나 그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가 있어야 하므로, 북한을 자극해 무력도발을 끌어내 그 명분을 만들려 했고, 그 과정에서 나라의 군사상 이익을 해쳤다는 것이다. 특검은 북한이 기대만큼 반응하지 않자 오물풍선을 띄운 원점을 타격하거나 한강중립수역 상공에 경고사격을 하는 계획까지 세웠다고도 주장했다.
작전을 실제로 지휘한 김용대는 일반이적 혐의에서 빠졌다. 특검은 계엄 여건을 만들려는 목적을 알았는지를 일반이적 적용 기준으로 삼았고, 김용대는 이를 몰랐다고 봤다. 김용대에게는 추락한 무인기를 훈련 중 손실로 꾸민 일, 군용물을 폐기하고 기록을 지우게 한 일 같은 은폐 혐의가 적용됐다.
1심이 계엄 목적을 인정한 근거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6부는 6월 12일 윤석열·김용현에게 각각 징역 30년, 여인형에게 15년, 김용대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김용현의 형은 특검 구형보다 5년 무거웠다. 전직 대통령이 외환죄로 유죄 판결을 받은 것은 처음이다.
1심이 작전 목적을 계엄 명분 조성으로 본 근거는 네 가지다. 오물풍선이 약해지거나 뜨지 않은 시기에도 작전을 계속했고, 합참이 반대했는데도 강행했으며, 대통령의 안보 정책을 총괄·조정하는 국가안보실에 알리지 않았다. 합참 안에서는 법무실이 즉시성·비례성을 이유로 이 작전에 반대 의견을 냈다. 네 번째 근거는 여인형이 2024년 10월 18일 휴대전화에 남긴 메모다. 메모에는 '불안정 상황을 만들거나 만들어진 기회를 잡아야 한다', '체면이 손상돼 반드시 대응할 수밖에 없는 타깃팅'이라는 표현이 있었다. 재판부는 이를 종합해 북한이 도발하지 않자 물리적 대응 가능성을 높이려고 작전을 지시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군사상 이익을 해쳤다는 판단도 이 목적 판단에서 이어진다. 1심은 무인기 추락으로 우리 전력이 노출되고 북한의 대비 태세가 강화됐으며, 군사력을 사적 목적에 써 불필요하게 소모했고, 군과 국민의 인명·재산 피해 위험을 만들었다고 봤다. 실제 무력충돌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재판부는 그런 위험을 만든 것만으로도 죄가 성립한다고 했다.
피고인들의 반론: 오물풍선 대응이었고, 계엄 결심은 12월이었다
피고인들은 항소심에서도 작전이 북한 오물풍선에 맞선 정당한 자위권 행사였고 군사상 불이익도 없었다고 주장했다. 김용현은 최후진술에서 무인기 작전 덕분에 오물풍선 도발이 억제돼 오히려 안전이 확보됐다고 말했다.
피고인 측 반론 가운데 가장 무게 있는 것은 시점이다. 윤석열은 비상계엄을 일으킨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따로 재판을 받아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윤석열 측은 그 재판 1심이 계엄 선포 이틀 전인 2024년 12월 1일에 행동을 결심했다고 인정했다는 점을 내세운다. 결심이 12월 1일이라면 10~11월의 무인기 작전이 계엄 명분을 위한 것일 수 없다는 논리다. 김용대도 작전은 11월에 끝났고 계엄은 12월 3일에 선포됐다며 두 사건의 관련성을 부인했다. 반면 무인기 사건 1심은 계엄 논의가 2024년 9월쯤 시작됐다고 판단했다.
기록을 맞춰 보면: 목적에 대한 반론은 약하다
'오물풍선 대응'이라는 설명은 이 작전이 다뤄진 방식과 맞지 않는다. 같은 시기 군은 오물풍선에 대해 공개적으로 경고하고 있었다. 도발을 억제하려는 군사 대응이었다면 정부의 안보 판단을 조정하는 국가안보실이 몰랐을 리 없고, 군의 법률 검토가 반대한 작전을 장관이 밀어붙인 이유도 설명되지 않는다. 특검은 수사 과정에서 김용현과 김용대가 비화폰으로 30여 차례 통화하고, 김용현이 합참의장을 거치지 말고 직접 보고하라고 지시한 정황도 포착했다. 북한이 침투를 발표하자 장관은 국회에서 부인했고, 추락한 무인기는 훈련 중 손실로 처리됐다. 1심은 이 처리를 허위공문서 작성과 허위보고 등의 범죄로 인정했다. 정상적인 군사 대응이었다면 지휘계통을 건너뛰고 기록을 꾸밀 이유가 없다.
시점 반론은 더 따져 볼 만하다. 두 판결이 정면으로 부딪히는지는 내란 1심의 '12월 1일'이 무엇의 시점이냐에 달렸다. 그날이 계엄 실행을 최종 결심한 날이라면, 그보다 앞서 실행 여건을 만들려 한 일과 모순되지 않는다. 여인형 자신의 해명도 이 방향을 가리킨다. 그는 최후진술에서 메모는 김용현에게 계엄에 반대하는 군 내부 사정을 설명한 것이었다고 했다. 이 해명을 그대로 받아들여도, 메모가 쓰인 10월에 이미 두 사람 사이에서 계엄이 이야깃거리였다는 뜻이 된다. 다만 두 1심 판결이 서로 다른 시점을 사실로 인정한 것은 분명하다. 이 차이는 무인기 사건 항소심이든 내란 사건 항소심이든 언젠가 정리해야 한다.
가장 약한 고리는 윤석열 개인의 승인이다
작전 목적과 달리, 윤석열이 작전을 승인했다는 판단은 정황 추론에 기대고 있다. 공개된 보도에는 윤석열이 작전을 지시하거나 승인했다는 문서나 진술 같은 직접증거가 나오지 않는다. 1심은 북한이 무인기 침투를 발표한 뒤에도 윤석열이 진위를 확인하지 않은 점과 지휘 관계 등을 종합해 "김용현이 대통령 승인 없이 작전을 감행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윤석열이 최후진술에서 대통령에게 보고될 수밖에 없다는 추론만으로 징역 30년을 선고했다고 공격한 것도 바로 이 대목이다.
추론의 근거가 약한 것은 아니다. 적국이 자국 수도에 한국군 무인기가 들어왔다고 공표하고 포병에 사격 대기를 건 상황에서 군 통수권자가 사실 여부를 묻지 않았다면, 이미 알고 있었다고 보는 편이 자연스럽다. 1심은 또 윤석열이 작전을 알지도 못한 국가안보실 관계자들이 보고하지 않았다고 탓한다고 지적했다. 작전이 처음부터 안보실을 건너뛰었으니, 안보실을 통해 보고받지 못했다는 사실은 윤석열이 몰랐다는 증거가 되지 못한다. 그래도 형사재판에서 유죄는 합리적 의심이 남지 않을 만큼 증명돼야 하고, 정황을 얼마나 무겁게 볼지는 재판부마다 다를 수 있다. 본안 심리가 1심부터 군사기밀을 이유로 비공개로 진행돼 항소심에서 어떤 증거가 새로 다퉈졌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항소심 판단이 1심과 갈린다면 이 대목일 가능성이 크다.
여인형과 김용대의 형량 다툼
특검이 1심보다 무거운 형을 요구한 사람은 여인형과 김용대다. 특검은 여인형이 모의 회합에 빠짐없이 참석하고 메모로 계엄 요건 조성을 구상·건의한 '핵심 기획자'인데도 1심이 '수동적 가담'이라며 형을 줄인 것은 부당하고, 부하들을 은폐에 동원한 김용대에게 집행유예는 지나치게 관대하다고 주장했다. 여인형은 메모가 오해됐고 계엄 선포를 미리 알지 못했다고 맞섰다. 김용대는 합참 지휘부는 기소하지 않으면서 하급 지휘관을 기소한 것은 형평에 어긋난다고 주장했다.
최후진술은 증거 쟁점에 답하지 않았다
이날 가장 크게 보도된 장면은 윤석열의 최후진술이었다. 그는 1심을 "재판이라는 형식을 빙자한 사법 테러"라고 불렀고, 거대 야당이 국정을 마비시켜 비상계엄을 선포했는데 그 야당이 정부를 장악해 이런 기소가 이뤄졌다며 계엄을 다시 옹호했다. 기소의 정치적 배경에 대한 이런 설명은 메모, 합참의 반대, 안보실 배제, 손실 위장이라는 기록에 대한 답이 되지 못한다.
그가 내놓은 실질적인 반론은 하나였다. 북한과 충돌하면 미국과 협력해 대응할 수밖에 없는데 심리전으로 어떻게 비상계엄 상황까지 갈 수 있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일반이적죄는 계획이 성공할 수 있었는지를 묻지 않는다. 1심이 처벌 근거로 삼은 것은 계획의 실현 가능성이 아니라, 그 계획을 실행하면서 생긴 전력 노출과 충돌 위험이었다.
12월 4일 판결이 가를 것
정리하면, 특검의 30년 구형은 1심 기록 위에 서 있다. 그 기록은 작전 목적에 관한 한 피고인 측의 '오물풍선 대응' 설명보다 계엄 여건 조성이라는 설명을 더 잘 뒷받침한다. 12월 4일 판결에서 실제로 갈릴 수 있는 곳은 두 군데다. 윤석열 개인의 승인을 정황만으로 인정할 수 있느냐, 그리고 내란 1심의 '12월 1일'과 무인기 1심의 '9월'을 어떻게 맞추느냐다. 항소심이 1심 판단을 유지하면 계엄 준비가 실행 석 달 전부터 이뤄졌다는 사실관계가 상급심에서 한 번 더 인정된다. 그렇게 되면 윤석열이 계엄을 오래 계획했는지가 내란 우두머리 사건 항소심에서도 쟁점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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