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 경제

국민연금 보유주식 평가액 100여일 새 182조원 감소…72%가 삼성전자·SK하이닉스, '운용 규칙 탓' 공방은 어디까지 맞나

국민연금이 지분을 5% 이상 보유해 공시한 상장사 287곳의 주식 평가액이 6월 말 515조9293억원에서 10월 15일 333조5330억원으로 182조3963억원(35.3%) 줄었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가 두 시점의 보유 지분과 주가로 추산한 값이다. 감소분의 71.8%인 131조971억원은 SK하이닉스(74조2261억원)와 삼성전자(56조8710억원) 두 종목에서 나왔다.

182조원은 무엇을 센 숫자인가

여러 매체가 이를 '3분기 182조원 손실'로 전했지만, 이 숫자가 세는 범위는 그보다 좁다. 비교 기간은 7~9월이 아니라 6월 30일부터 10월 15일까지다. 국민연금이 가진 주식 전체가 아니라 5% 이상 공시 종목만 셌고, 그사이 17개 종목이 새로 5% 이상이 되고 13개 종목이 5% 아래로 빠지는 등 보유 수량도 바뀌었다. 팔아서 확정한 손실도 아니다. 시가가 내려간 만큼을 잰 값이다.

그렇다고 장부 위의 숫자로만 볼 수는 없다. 국민연금은 공식 수익률을 계산할 때 팔지 않은 자산의 평가손익까지 반영한다. 이번 감소는 앞으로 나올 운용성과에 그대로 잡힌다. 다만 가입자가 받는 연금액이 그만큼 줄지는 않는다. 노령연금은 가입기간과 소득으로 정해지고 해마다 물가에 맞춰 조정된다. 주가 하락의 부담은 기금이 바닥나는 시점 같은 장기 재정 쪽에 쌓인다.

두 반도체 주식이 끌어내렸다

평가액이 줄어든 직접적인 이유는 국민연금이 가장 많이 들고 있는 두 종목의 급락이다. 6월 말부터 10월 15일까지 삼성전자 주가는 33만4000원에서 21만원으로, SK하이닉스는 265만원에서 126만2000원으로 떨어졌다. 국민연금은 10월 15일 기준 두 회사 지분을 각각 7.84%, 7.32% 갖고 있다. 두 회사 보통주는 이날 코스피 시가총액의 46.92%를 차지했다. 한국 증시에 크게 투자하는 국민연금은 두 종목의 등락을 피해 가기 어렵다.

코스피는 메모리 반도체 호황을 타고 6월 22일 9114.55로 사상 최고치를 찍은 뒤 7월 한 달 22% 넘게 떨어졌다. 10월 들어 다시 7거래일 연속 내려 15일 하루에 7.57% 급락한 5554.22로 마감했다. 10월 하락을 두고는 중국 창신메모리(CXMT)의 서버용 D램 출시 계획이 불러온 경쟁 우려에 미국 물가 지표와 AI 인프라 기업의 부채 우려가 겹쳤다는 설명이 나왔다. 같은 종목들이 오를 때는 국민연금 보유주식 평가액을 4월 1일~7월 6일 약 189조원 불렸다. 이번 감소는 그 상승분을 거의 그대로 되돌린 것이다.

왜 정치 쟁점이 됐나: 올해 두 번 바뀐 운용 규칙

이 손실이 정치 공방으로 번진 것은 국민연금이 올해 국내주식 운용 규칙을 두 번 바꿨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은 국내주식·해외주식·채권 같은 자산마다 목표비중과 허용범위를 정해 두고, 실제 비중이 범위를 벗어나면 사고팔아 되돌린다. 이를 리밸런싱이라고 한다. 주가가 오르면 국내주식 비중이 커져 팔게 되고, 떨어지면 비중이 줄어 사게 된다. 운용하는 사람의 시장 전망과 상관없이 오를 때 팔고 내릴 때 사도록 미리 정해 둔 규칙이다.

첫 변경은 1월에 나왔다. 그에 앞서 이재명 대통령은 2025년 말 국민연금 업무보고에서 국내 주가 상승으로 국민연금의 주식 보유 한도가 초과됐다는 점을 짚으며 "국민연금도 (국내 주식 배분 비중을) 고민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국민연금의 운용정책을 정하는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위원장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는 예년보다 이른 1월 26일 회의를 열었다. 기금위는 국내주식 목표비중을 14.9%로 정하고, 비중이 허용범위를 벗어나도 6월 말까지 리밸런싱을 하지 않기로 했다. 당시 국내주식 비중은 이미 허용범위 상단에 다가가 있었다. 기금위는 기금이 713조원이던 2019년에 만든 규칙을 1400조원대로 불어난 기금에 그대로 적용하면 매도 규모가 두 배 이상 커져 시장에 충격을 준다는 이유를 들었다.

두 번째 변경은 5월 28일이다. 기금위는 국내주식 목표비중을 20.8%로 올리고 허용범위를 한시적으로 넓혔다. 증권가는 이로써 국내주식을 최대 28.8%까지 담을 수 있게 됐다고 추정했다. 유예는 6월 말 끝났고 리밸런싱은 7월 1일 다시 시작됐다. 그 사이에 6월 지방선거가 있었다.

야당 "증시 부양에 동원", 공단 "시장 충격을 피한 판단"

국민의힘은 두 결정을 국민의 노후자금을 정권의 증시 부양에 끌어다 쓴 일로 본다. 국민의힘 보건복지위원들은 10월 14일 정치적 개입 여부와 위험관리의 적정성을 국정조사로 밝히라고 요구했고, 정점식 원내대표는 16일 국정감사에 이어 국정조사와 특검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전직 국회의원인 유승민은 17일 SNS에서 "국민의 노후자금을 외국투자자들에게 갖다 바쳤다"며 "절대 용서할 수 없는 죄"라고 썼고, 국민의힘에 국정조사 요구와 책임자 형사고발, 특검법 발의를 주문했다. 이들 주장의 뼈대는 두 가지다. 규칙대로 주가가 오를 때 팔았다면 이익을 확정할 수 있었고, 그렇게 비중을 낮춰 두었다면 하락장에서 주식을 사들여 시장을 받칠 여력도 남았으리라는 것이다.

김성주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정치적 동원을 부인한다. 그는 10월 14일 국정감사에서 1월에 유예하지 않았다면 하루 8000억원 이상, 코스피 거래대금의 10% 이상을 팔아야 했을 것이라며 시장 충격을 피한 결정이었다고 말했다. 당시 기금위에는 윤석열 정부 때 추천된 전문가도 있었지만 이견이 없었고, 모두 증시를 낙관했다고도 했다. 선거를 의식했다는 지적에는 8월에 이미 매년 5월 말 자산배분을 정해 7월부터 적용하는 일정에 선거가 끼어 있었을 뿐이라고 답했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주식·외환시장 충격과 기금 수익성을 고려한 판단이었다고 거들었다.

야권은 국민연금 문제를 5월 27일 상장된 삼성전자·SK하이닉스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품 도입과 함께 묶어 공격한다. 이 상품을 두고 국민의힘은 9월 국정조사 요구서를 냈고, 김용범 전 대통령비서실 정책실장 등 세 명을 공수처에 고발했으며, 특검 추진을 당론으로 정했다. 정점식 원내대표는 민주당이 국정조사 요구를 거부했다고 주장했다. 두 사안 모두 국정조사가 실제로 열리거나 특검법이 발의·통과됐다는 보도는 아직 없다. 국민연금 사안은 국정감사 질의와 국정조사·특검 요구 단계에 머물러 있다.

182조원 가운데 규칙 변경과 이어지는 몫

이 공방에서 먼저 가려야 할 것은 182조원이 규칙 변경 때문에 생긴 손실이냐는 것이다. 확인된 숫자로 따지면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 1월 규칙대로라면 국내주식은 기금의 19.9%까지만 담을 수 있었다. 백종헌 국민의힘 의원이 국정감사에서 제시한 6월 말 국내주식 비중은 29%를 넘었다. 규칙을 지켰다면 6월 말 국내주식 보유액은 실제의 3분의 2 남짓이었을 것이라는 뜻이다. 그래도 국민연금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대량으로 들고 있었을 것이고, 182조원 가운데 3분의 2가량은 어느 쪽이든 피할 수 없었다. 규칙 변경과 이어질 수 있는 것은 나머지 3분의 1, 60조원 안팎이다. 국내주식 전체와 5% 공시 종목의 구성이 다르고, 팔았을 돈을 어디에 넣었을지도 따지지 않은 거친 계산이다. 그래도 크기를 가늠하기에는 충분하다.

그 60조원 안팎도 그대로 손실은 아니다. 이 몫은 상승기에 팔지 않고 남겨 둔 주식이어서, 규칙대로였다면 언제 팔았을지에 따라 득실이 갈린다. 유예를 결정한 1월 말 증시는 '코스피 5000시대'로 불렸고, 10월 15일 코스피는 5554였다. 1월에 팔았을 주식은 지금도 그때보다 비싸다. 반대로 코스피가 7000~9000을 오가던 5~6월에 팔았을 주식은 지금 훨씬 싸다. 유예의 득실은 날짜별로 팔았을 물량을 다시 계산해야 나온다. 이만희 국회 보건복지위원장이 국정감사에서 바로 그 비교를 요구했다. 김성주 이사장은 가정에 따라 정확성이 떨어진다면서 유예가 수익에 도움이 됐다고만 답했다. 계산은 내놓지 않았다.

하락장의 '안전판' 논리도 같은 방식으로 따져야 한다. 유안타증권 이재원 연구원은 비중을 높여 둔 연기금이 급락장에서 적극적으로 사들이기 어렵다고 봤고, 실제로 '연기금 등'으로 분류되는 투자자는 10월 1~16일 약 2070억원을 순매도했다. 그러나 대신증권은 10월 8일 국민연금 국내주식 비중을 24.8%로 추산하면서, 상한으로 추정되는 28.8%까지 더 살 여지가 남아 있다고 봤다. 규칙 변경 때문에 국민연금이 하락장에서 주식을 살 수 없게 된 것은 아니다.

문제는 손실의 크기가 아니라 결정의 방식

따라서 "이런 바보 같은 정책으로 국민연금을 날렸다"는 유승민의 말은 숫자가 뒷받침하지 않는다. 182조원 대부분은 국민연금이 규칙과 상관없이 크게 들고 있던 반도체 대형주가 떨어진 결과다. 규칙 변경과 이어지는 몫은 그 일부이고, 그마저 득실이 계산되지 않았다. 같은 이유로 "유예가 수익에 도움이 됐다"는 김성주 이사장의 말도 근거가 제시되지 않았다.

확인된 사실로 판단할 수 있는 것은 결정의 방식이다. 리밸런싱 규칙은 운용하는 사람이 시장을 어떻게 보든 정해진 대로 팔고 사게 해서, 기금을 시장 전망에 거는 일을 막으려고 둔 장치다. 기금위가 공식적으로 내세운 이유는 시장 충격이었다. 그러나 김성주 이사장은 6월 기자설명회에서 국내 증시의 체질이 바뀌었다고 판단해 비중을 늘렸다고 설명하며 "이 좋은 장을 포기하면 우리가 바보가 될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10월 국정감사에서는 모두가 증시를 낙관했다는 점을 결정의 근거로 들었다. 규칙을 멈춘 판단의 바탕에 상승이 이어진다는 전망이 있었다는 뜻이다. 규칙이 막으려던 바로 그 일, 곧 기금을 시장 전망에 건 셈이고, 그 전망은 빗나갔다.

이 결정은 대통령이 국민연금의 국내주식 비중을 언급한 뒤 예년보다 앞당겨 열린 회의에서 시작됐다. 대통령 발언과 기금위 결정 사이에 지시나 요청이 있었다는 증거는 확인되지 않았다. 그런데 기금위는 2026년 리밸런싱 관련 회의록을 2030년에 공개하기로 했다. 운용의 독립성을 의심받을 조건이 갖춰진 상황에서, 그 의심을 풀 자료를 4년 뒤로 미룬 것이다.

그래서 야당의 결론과 요구는 나눠서 봐야 한다. '182조원을 날린 죄'라는 결론은 과장이다. 그러나 누가 어떤 근거로 규칙을 멈췄는지, 그리고 유예로 기금이 얻거나 잃은 것이 얼마인지 밝히라는 요구는 정당하다. 그 답은 이미 기금위와 국민연금의 손 안에 있다. 기금위가 가진 회의록과, 국민연금이 만들 수 있는 유예 여부에 따른 비교 계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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