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시위 폭력, 정부는 '극좌' 극우·트럼프는 '이민자' 탓…수사로 확인된 것은 일부뿐
10월 17일 토요일, 프랑스 전역에서 생활비와 교육 여건에 항의하는 집회가 열렸다. 내무부는 참가자를 55만 명, 주최 측은 80만 명으로 추산했다. 행진은 대부분 평화롭게 끝났다. 그러나 여러 도시에서 행진과 따로 움직이는 집단이 경찰과 충돌하고, 상점을 약탈하고, 관공서를 공격했다. 중부 도시 리모주에서는 1883년에 문을 연 시청이 불에 타 첨탑과 지붕이 무너졌다. 마르세유·릴 시청과 보르도의 도지사 관저도 침입당했다. 정부는 파손·약탈된 점포를 최소 3,000곳으로 추산했다. 제랄드 다르마냉 법무장관은 21일까지 약 2,500명이 경찰에 유치되고 174명이 수감됐다고 밝혔다.
10월 17일 프랑스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그 뒤 프랑스 안팎에서 폭력의 배후를 두고 공방이 벌어졌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정부는 극좌 집단을 지목했다. 이 글에서는 이를 '극좌 배후론'이라 부른다. 극우 정당 국민연합(RN)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민자를 원인으로 내세웠다. 이쪽은 '이민자 원인론'이라 부른다. 그런데 사건을 수사하는 파리 검찰은 어느 쪽 설명도 전체로는 확인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두 설명이 각각 어디까지 사실에 기대고 있는지, 근거가 모자란 부분은 왜 그렇게 강하게 주장되는지 따져 볼 필요가 있다.
시위는 학교에서 시작됐다
배후를 따지려면 시위와 폭력부터 구분해야 한다. 이번 시위는 9월 하순 파리 근교 고교생들의 학교 봉쇄에서 시작됐다. 학생들은 교사·직원 부족, 낡은 시설, 과밀학급에 항의했다. 10월 초에는 대학생과 교사가 합류했다. 17일에는 노동총연맹(CGT) 같은 노조와 노란조끼 운동 참가자들이 높은 생활비와 기록적인 연료비 문제를 들고 가세했다.
폭력은 이 행진 안이 아니라 그 가장자리에서 일어났다. 17일 파리 본행진이 평화롭게 진행되는 동안, 주변에서는 별도로 움직이는 집단이 충돌과 약탈을 벌였다. 파리 마들렌 광장 일대에서는 블랙 블록 집단이 경찰을 양쪽에서 압박하기도 했다. 그러니 배후 공방의 쟁점은 수십만 명의 시위대가 누구였느냐가 아니다. 행진 주변에서 폭력을 저지른 사람들이 누구였느냐다.
정부의 답: 극좌가 조직했다
정부는 사태 당일부터 극좌를 지목했다. 세바스티앵 르코르뉘 총리는 17일 저녁 극좌 집단이 폭력을 조직했고 약탈하려는 범죄자들이 합류했다고 주장했다. 마크롱 대통령도 18일 대국민 연설에서 극좌 소집단 출신 선동세력에 범죄자들이 합류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마크롱은 수십만 참가자의 요구는 정당하며 폭력 행위자와 혼동해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극좌 배후론은 곧 특정 정당을 겨냥하는 데까지 나아갔다. 르코르뉘 총리는 19일 극좌가 대통령선거까지 깊은 혼란을 조성하려 한다고 말했다. 그는 앞서 극좌 세력 안에서 장뤼크 멜랑숑이 이끄는 급진좌파 정당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LFI)가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고도 했다. 로랑 뉘네즈 내무장관은 20일 하원에서 LFI가 "불에 기름을 부었다"며, LFI와 일부 극좌 소집단의 연결은 "실재한다"고 말했다. LFI는 시위를 지지하지만 조직하거나 선동하지는 않았다고 부인했다. 멜랑숑은 17일 지지자들에게 약탈과 파괴에 끼지 말라고 호소했다. 르코르뉘의 대선 혼란 발언에는 관련자를 밝히고 입증하라고 맞섰다.
극좌 배후론은 정부가 대비 실패를 인정하던 바로 그 시기에 나왔다. 뉘네즈 장관은 17일 밤만 해도 경찰 배치가 부족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나 19일에는 참여 규모를 실제보다 약 2.5배 낮게 예상했고 일부 대도시에서 통제력을 잃었다고 인정하며 사의를 밝혔다. 마크롱 대통령은 사의를 반려했다. 같은 날 다르마냉 법무장관도 당국이 명백히 실패했다고 인정했다. 그는 프랑스 정보기관이 극좌와는 제대로 싸울 줄 모른다고도 말했다.
수사로 확인된 것: 극좌는 있었지만 '배후'로 확인되지는 않았다
수사당국의 발표는 정부의 주장과 달랐다. 파리 검찰을 이끄는 로르 베퀴오 검사장은 19일 TF1 인터뷰에서 극좌 인사들이 대거 가담했느냐는 질문에 지금 가진 정보로는 전혀 확인할 수 없다고 답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17일 파리에서 경찰에 구금된 557명 가운데 다수는 경찰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일부는 조사에서 침묵하며 정치적 요구를 내놓지 않았다. 검사장은 폭력 행위자가 모두 체포된 것은 아니라는 단서도 달았다.
그렇다고 검사장이 극좌의 존재를 부정한 것은 아니다. 그는 같은 인터뷰에서 경찰이 블랙 블록으로 분류한 집단이 파리 집회 시작부터 있었다고 말했다. 오후에는 상황을 틈타려는 사람들이 파리 기차역으로 들어온 정황도 있었다고 했다. 리모주 시청 방화 사건에서는 20일 대테러 경찰 특공대가 용의자를 체포했고, 경찰의 대테러수사부서가 수사에 들어갔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경찰 취재원들은 이 용의자를 극좌 활동가이자 국가안보 감시 명단 등재자로 지목했다.
정부는 체포자 사이에서 극좌가 잘 드러나지 않는 이유를 따로 설명한다. 내무부는 검사장이 사법 절차에서 얻은 정보를 말한 것일 뿐이며, 정보기관이 극좌 활동가를 따로 식별했고 그들은 체포를 피했다고 밝혔다. 그 판단의 근거는 공개하지 않았다. 경찰 쪽 평가도 엇갈린다. 방송사 BFMTV가 취재한 치안 관계자들은 극좌 활동가가 경찰과 공공기관을 공격하고 교외 청년들이 약탈에 가세했다고 봤다. 반면 탐사매체 메디아파르가 취재한 한 경찰노조 간부는 극좌가 약 20%이고 나머지 80%는 정치 성향을 붙일 수 없는 약탈자라고 추산했다. 그르노블 정치학연구소의 세바스티앵 로셰 교수는 프랑스 극좌가 전국 규모의 폭력을 이끌기에는 너무 작고 조직이 허술하다고 평가했다.
LFI를 둘러싸고는 반대 방향의 의혹도 나왔다. 메디아파르는 한 지역정보 담당 경찰 간부가 동료들의 판단과 달리 LFI를 운동의 배후로 쓰라는 요구를 받았다고 주장했다고 보도했다. 메디아파르는 이 주장이 담긴 내부 대화를 열람했다고 밝혔다. 내무부와 뉘네즈 장관은 그런 지시는 없었다고 부인했다. 지금은 양쪽의 주장만 있어 이 의혹이 사실인지 판단할 수 없다.
지금까지 확인된 것을 종합하면 이렇다. 극좌 활동가가 일부 현장에 있었다는 것은 사실에 가깝다. 파리 검사장이 블랙 블록의 활동을 확인했고, 리모주 방화 용의자도 극좌 활동가로 지목됐다. 그러나 극좌가 전국의 폭력을 '조직했다'는 것, 그리고 LFI가 그 일부라는 것은 확인되지 않았다. 체포된 사람 다수는 정치적 요구를 내놓지 않은, 경찰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정부가 이 간극을 메우려고 내세우는 근거는 공개되지 않은 정보기관 판단이다. 그런데 그 정보기관은 법무장관 스스로 극좌 대응에 약하다고 인정한 곳이다. 17일을 내다보지 못한 정보 판단이, 사태가 끝난 뒤에는 책임 소재를 가리는 거의 유일한 근거가 된 셈이다.
이민자 원인론: 근거가 없다
공방의 반대편에서는 이민자를 원인으로 지목했다. 국민연합의 마린 르펜은 18일 영상 연설에서 정부가 예방·통제·관리에 모두 실패했다고 비판하면서 LFI와 반파시스트 집단을 같은 흐름으로 묶었다. 이후에는 폭력의 원인을 좌파 세력과 수십 년간의 이민으로 돌렸다. 미국 CNN은 르펜이 이민자 인구가 많은 교외 지역의 비행 청소년을 탓했다고 전했다. RN 부대표 세바스티앵 슈뉘는 폭력 가담자를 이민과 청년의 비행, 극좌, 그리고 독일·스웨덴 등지에서 온 외국인 블랙 블록으로 나누고 국경을 통제하라고 요구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말은 더 직접적이었다. 그는 18일 소셜미디어에 이민자들이 프랑스를 장악했다며 국경을 닫으라고 썼다. 19일 백악관 기자들에게는 파리가 곧 무슬림 도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20일에는 교육 지출을 늘리면 약탈과 방화가 멈추겠느냐는 질문에 "교육이 아니라 이민 문제"라고 답했다. JD 밴스 부통령은 리모주 시청이 불타는 영상을 올리며 서방 자유주의자들이 제3세계를 프랑스에 수입했다고 썼다.
이민자 원인론을 뒷받침하는 수사 결과는 없다. 이민 배경에 관해 프랑스 당국이 한 말은 다르마냉 법무장관의 20일 인터뷰가 거의 전부다. 그는 약탈자와 경찰 공격자가 남성 95%, 성인 70%이고, 체포자 가운데 이민 배경 인사·외국인·프랑스인이 섞여 있다고 말했다. 이민 배경을 가진 체포자가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장관은 그 비율을 밝히지 않았고, 이민이 폭력의 원인이라는 수사 근거도 내놓지 않았다. 체포자 가운데 이민 배경이 있는 사람이 섞여 있다는 사실은, 프랑스인이 섞여 있다는 사실과 마찬가지로 폭력의 원인을 설명해 주지 않는다. CNN도 이번 폭력을 이민자가 저질렀다는 증거는 거의 없다고 썼다.
트럼프의 이민자 원인론이 증거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는 점은 발언 시점에서도 드러난다. 그는 폭력 사태가 일어나기 열하루 전인 10월 6일에 이미 교육 재원을 요구하던 프랑스 학생 시위를 이슬람과 통제되지 않는 이민 문제로 규정했다. 고교생들이 학교 봉쇄를 하던 때다. 결론이 사건보다 먼저 나와 있었던 것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21일 이민자와 이슬람주의자 무리가 프랑스를 침공했다는 설명을 "완전히 거짓"이라고 반박했다.
두 설명이 각자의 선거에서 하는 일
근거가 모자란 설명이 이렇게 크게 나오는 데는 선거가 걸려 있다. 가장 분명한 쪽은 트럼프다. 19일 캔자스주에서 열린 공화당 상원의원 지원 유세에서는 시작 전 대형 화면에 프랑스 폭력 사태 영상이 상영됐다. 트럼프는 연단에서 "이번 선거에 무엇이 걸렸는지 보려면 프랑스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라"고 말했다. 민주당이 이기면 미국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도 주장했다.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도 민주당이 의회를 되찾으면 미국이 같은 처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CNN은 일부 트럼프 참모들이 이 사태를 중간선거 판세를 바꿀 '10월의 서프라이즈'로 여긴다고 보도했다. 같은 보도는 미국 유권자 다수의 관심사는 생활비이고 트럼프의 이민 정책은 인기가 없어, 실제 득표 효과는 판단하기 이르다고도 썼다. 마크롱은 트럼프를 포함한 외국 지도자들을 두고 "프랑스를 등에 업고 선거운동을 한다"고 비판했다.
프랑스에서는 대통령선거가 6개월 앞이다. 르펜은 유럽의회 보좌관 자금 사건 항소심에서 유죄가 유지됐지만 피선거권 제한이 줄어 출마 길이 열린 상태이고, 사태 전부터 여론조사 선두였다. 국내 일부 보도는 사태 뒤 르펜의 당선 확률이 급등했다고 전했다. 그런데 이 수치는 여론조사가 아니라 미국 예측시장 칼시에서 거래되는 계약 가격이다. 칼시에서 르펜 가격은 한 달 새 39%에서 53%로 올랐다. 반면 여론조사 기관 Ifop이 17~19일 유권자에게 물은 결과에서 르펜의 1차 투표 지지율은 후보 구성에 따라 34~38%로, 직전 조사보다 1~2%포인트 올랐다. 마크롱 진영 출신 장바티스트 모로 전 의원은 르펜에게 대선까지 "6차선 고속도로"가 열렸다고 했다. 그러나 폭력 사태가 유권자의 선택을 크게 바꿨다는 증거는 아직 여론조사에서 보이지 않는다.
정부의 극좌 배후론도 선거 구도와 떨어져 있지 않다. 르코르뉘 총리는 17일 첫 반응에서부터 대선을 6개월 앞두고 폭력을 선거의 예열 무대로 삼으려는 이들에게 경고했다. 정부가 극좌를 지목한 것은 대비 실패를 인정하던 시기였다. 그 지목은 근거를 공개하지 않은 채 대선에서 경쟁할 정당인 LFI로까지 넓어졌다. 그런 점에서 정부의 주장 역시 수사 결과를 앞서 나갔다.
지금 가장 설명력 있는 그림
지금까지 확인된 사실로 그릴 수 있는 가장 설득력 있는 그림은 이렇다. 교육과 생활비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가 있었다. 그 가장자리에서 블랙 블록 같은 극좌 활동가 일부와, 정치 성향이 드러나지 않는 다수의 약탈 가담자가 폭력을 저질렀다. 경찰은 그 규모를 예상하지 못했다. 이 그림에 비추면 정부의 극좌 배후론은 일부 현장에 대해서는 맞다. 하지만 극좌가 전국의 폭력을 조직했다는 대목과 LFI를 그 일부로 묶는 대목은 근거를 넘었다. 트럼프와 국민연합의 이민자 원인론은 근거가 없다. 특히 트럼프는 폭력이 일어나기 전부터 같은 결론을 말했고, 그것을 미국 중간선거 유세에 썼다.
이 판단을 바꿀 수 있는 것은 수사다. 리모주 방화 수사나 체포자들의 재판에서 조직적 연계가 드러나거나 정부가 정보기관 판단의 근거를 공개하면, 극좌 배후론의 무게는 달라진다. 이민자 원인론이 성립하려면 이민 배경이 폭력과 어떻게 이어지는지가 수사로 드러나야 한다. 24일 추가 시위가 예고된 가운데, CGT는 정부가 학생과 노동자의 요구에 구체적인 답을 내놓지 않았다며 11월 5일 전국 파업을 호소하고 있다. 배후 공방이 이어지는 동안 시위가 처음 제기한 교육과 생활비 문제는 아직 답을 얻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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