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시진핑·푸틴과 만나겠다, 의제는 비핵화"…우크라이나 빠진 미·중·러 회동 구상, 확정된 것은 없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0월 19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셋이 만날 수 있다고 말했다. 회동 장소로 거론되는 것은 11월 18~19일 중국 선전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다. 하지만 이틀이 지난 21일까지 회동을 확정한 나라는 없고, 세 나라가 내세우는 의제도 서로 다르다. 그런데도 이 구상은 우크라이나와 유럽을 흔들었다. 회담이 열릴지 몰라서가 아니라, 미국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없이도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내는 문제를 논의할 수 있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하겠다"면서도 "우크라이나 때문은 아니다"라고 했다
트럼프의 말은 백악관에서 헬기에 오르기 전 기자들과 짧게 주고받은 문답에서 나왔다. 발언 기록을 순서대로 보면 그는 서로 다른 질문 세 개에 각각 답했다.
첫 질문은 푸틴·시진핑과의 3자 회동에 동의했느냐는 것이었다. 트럼프는 "아니다, 하지만 하겠다"고 답하면서 "우크라이나 때문은 별로 아니다"라고 했다. 러시아도 중국도 우크라이나 문제에서는 "괜찮았다"며 회동을 하는 이유는 "핵무기와 비핵화를 이야기하려고"라고 설명했다. 시진핑이 원하면 중국에서 열고, 무역 같은 다른 문제도 다룰 수 있다고 덧붙였다.
둘째 질문은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없이 시진핑·푸틴과 종전을 논의하겠느냐는 것이었다. 트럼프는 "누가 거기 있든 없든 전쟁을 끝내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뭐든 하겠다"고 답했다.
셋째로 기자가 트럼프는 "역사의 잘못된 편에 서 있다"는 젤렌스키의 비판을 전했다. 트럼프는 "다른 사람이 우크라이나를 대표해 협상할 때"라고 받았다.
'젤렌스키 배제'라는 보도 제목은 이 세 답을 이어 붙인 것이다. 참석자 명단이 발표된 것은 아니다. 다만 세 답을 합치면 두 가지는 분명하다. 트럼프는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빠진 자리에서도 종전을 논의할 뜻이 있다. 그리고 우크라이나의 협상 대표가 바뀌어야 한다고 본다.
제안은 푸틴에게서 나왔고, 아직 확정한 나라는 없다
트럼프가 이런 질문을 받은 것은 직전에 나온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 보도 때문이다. WSJ는 푸틴이 10월 9일 트럼프와의 통화에서 APEC 계기 3자 회동을 제안했다고 보도했다. 우크라이나 종전을 논의하자는 제안이었다. 근거는 이 내용을 보고받은 익명의 전직 러시아 정보요원이다. 같은 기사에서 러시아와 중국의 협의를 아는 다른 취재원들은, 러시아가 중국에도 외교 경로로 같은 제안을 했고 중국은 트럼프가 동의하면 반대하지 않겠다는 뜻을 보였다고 전했다. 푸틴은 앞서 10월 1일 발다이 토론클럽 회의에서 의제를 먼저 합의해야 한다는 조건을 달아 3자 정상회동에 찬성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바 있다.
세 나라의 공식 설명으로 보면 회동은 아직 '가능성' 단계다.
- 미국: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은 같은 날 "회동 논의는 있었던 것 같지만 확정된 게 있는지는 모른다"고 말했다.
- 러시아: 크렘린 대변인 드미트리 페스코프는 19일 가상의 회동 가능성이 거론됐을 뿐 구체적인 합의나 의제는 없다고 설명했다. 21일에는 트럼프의 특사 스티브 위트코프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푸틴을 만났다. 회담 뒤 푸틴의 외교보좌관 유리 우샤코프는 이 회동도 논의했고, 세 수도 어느 곳도 구상을 거부하지 않으며, 중국이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다만 "여건이 맞으면" APEC 일정에 들어간다는 조건을 달았다.
- 중국: 외교부 마오닝 대변인은 19일, 20일, 21일 모두 "제공할 정보가 없다"고만 답했다. 받아들이지도, 부인하지도 않았다.
중국이 회동을 준비하고 있다는 말은 러시아 측 주장이다. 중국은 이를 확인하지 않았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중국 관리들이 구상을 비공개로 환영했지만 적극적으로 밀지는 않았고, 의제나 준비에 관한 실질적인 논의도 거의 없었다고 전했다. 중국이 침묵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회동은 중국에 기회이면서 부담이다. 미국 싱크탱크 스팀슨센터의 쑨윈은 WSJ에 중국이 강대국 관계의 중심이자 미·러 사이 중재자로 비치기를 원한다고 해석했다. 반면 WSJ가 인용한 취재원들에 따르면 중국 관리들은 이 회동이 APEC 본행사를 가리고 유럽과의 경제 관계를 해칠 수 있다고 걱정한다.
세 나라가 원하는 의제가 서로 어긋난다
회동이 확정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의제다. 페스코프도 21일 미국은 핵군축을 논의하고 싶어 하고 중국은 원하지 않는다고 인정했다.
러시아가 원하는 의제는 우크라이나다. WSJ는 크렘린이 이 형식을 러시아가 강대국 클럽의 일원이라는 사실을 굳히는 수단으로 본다고 분석했다. 러시아가 승리의 최대 걸림돌로 여기는 유럽을 협상에서 빼는 효과도 노린다는 것이다. 그런데 트럼프는 바로 이 의제를 공개적으로 낮췄다.
트럼프가 원하는 '비핵화'는 핵무기를 모두 없애자는 뜻이 아니다. 지금까지 나온 설명으로 보면 미·중·러가 각자 가질 수 있는 핵무기 수에 상한을 두는 3자 군비통제 구상이다. 5월 트럼프의 방중을 앞두고 미국 고위 당국자는 AP에 이 구상을 세 나라 핵무기 보유량에 한도를 두는 협정이라고 설명했다. 9월 시진핑의 미국 국빈 방문 때 나온 백악관 설명자료에도 트럼프가 3자 군비통제 협상을 제창했다고 적혀 있다. 이런 구상이 나온 배경에는 핵무기를 묶던 장치가 사라진 상황이 있다. 미국과 러시아가 각자 배치한 전략핵탄두를 1,550기로 제한하고 서로 사찰하게 했던 뉴스타트(신전략무기감축조약)는 2026년 2월 5일 만료됐다. 지금은 세 나라 핵무기 어디에도 합의된 상한이 없다. 미국은 새 협정에 핵무기를 늘리고 있는 중국까지 넣으려 한다.
개최국 중국은 이 의제를 공개적으로 거부해 왔다. 트럼프 발언 사흘 전인 10월 16일 마오닝 대변인은 중국 핵전력이 미·러와 같은 규모가 아니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 단계에서 중국에 3자 핵군축 협상 참여를 요구하는 것은 "불공평하고 불합리하며 실행 가능하지 않다"고 했다. 핵무기를 훨씬 많이 가진 미·러가 먼저 크게 줄여야 한다는 것이 중국의 입장이다. 트럼프 1기인 2020년에도 미국은 같은 3자 협상을 추진했지만 중국이 거부해 열리지 못했다.
정리하면 러시아가 원하는 의제는 트럼프가 공개적으로 낮췄고, 트럼프가 원하는 의제는 개최국이 거부한다. 중국 런민대 충양금융연구원장 왕원은 SCMP에 의제 불일치가 성사의 장애라고 말했다. 회동이 열려도 실질적인 이득보다 상징적인 가치가 크다는 평가였다. 미국 군비통제협회 대릴 킴벌 사무총장은 APEC을 계기로 한 번 만나는 것은 기껏해야 정식 협상으로 가는 출발점이라고 평가했다. 트럼프 팀이 현실적이고 균형 잡힌 제안을 아직 마련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덧붙였다.
반발이 큰 이유: 러시아 쪽으로 기운 결정들 직후에 나왔다
회담이 열릴지조차 모르는데도 우크라이나와 유럽은 크게 반발했다. 이 구상이 미국이 러시아에 유리한 결정을 연달아 내린 직후에 나왔기 때문이다.
푸틴이 회동을 제안했다는 10월 9일 통화 뒤 트럼프는 러시아가 미국과 세계 시장에 경유를 공급하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WSJ는 이 합의를 중간선거를 앞두고 연료값을 낮추려는 시도로 설명했다. 16일에는 의회가 9월 통과시킨 대러 제재법인 린지 그레이엄 러시아·이란 제재법에 대한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이 법에 따른 관세·제재 적용을 국익을 이유로 기한 없이 면제하는 행정명령이었고, 공화·민주 양당 의원들이 반발했다. 그사이 익명의 우크라이나 관리들은 미국 특사들이 압박했다고 주장했다. 러시아 정유시설 공격을 멈추지 않으면 정보 공유와 무기 공급을 끊을 수 있다고 압박했다는 것이다. 트럼프와 루비오는 정보 공유가 계속되고 있다고 말한다.
트럼프의 발언이 나온 19일에는 우크라이나에 갈 패트리엇 요격미사일 일부가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장관의 승인을 기다리며 묶여 있다는 보도도 나왔다. 동맹국이 이미 값을 치른 물량도 포함돼 있었다. 루비오는 다음 날 지연 가능성은 인정했다. 다만 세계적으로 수요가 많고 미국에도 우선순위가 있기 때문이며, 우크라이나를 해치려는 정치적 지시는 없었다고 말했다. 이 지연이 회동 구상과 연결돼 있다는 증거는 없다. 그러나 우크라이나가 보기에는 상황이 이렇다. 무기는 늦어지고 러시아 제재는 풀리고 미국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협상 대표를 바꾸라고 말한다. 그런 가운데 강대국 세 정상이 우크라이나 문제를 논의할 수 있다는 말이 나왔다.
우크라이나와 유럽의 반응은 이런 흐름 속에서 나왔다. 안드리 시비하 우크라이나 외무장관은 미·중·러 정상회담이 푸틴에게 전쟁을 계속하라고 부추길 뿐이라고 했다. 휴전도 받아들이지 않은 푸틴에게 국제적 위상만 준다는 것이다. 그는 대신 우크라이나·미국·러시아 정상회담을 제안했다. 젤렌스키는 20일 이렇게 말했다. 세 나라가 만나는 것은 그들의 선택이지만, 우크라이나와 그 미래가 의제라면 우크라이나가 협상 테이블에 있어야 한다. 카야 칼라스 유럽연합(EU) 외교안보 고위대표는 미국 협상가들이 우크라이나에 푸틴의 조건대로 항복하라고 압박해 왔다고 비판했다. 러시아가 원하는 제재 해제는 유럽이 결정할 일이므로 유럽도 협상 테이블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없는 자리에서 종전은 결정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우크라이나가 회담 자체를 막자는 것은 아니다. 젤렌스키의 요구는 좁다. 세 나라가 만나는 것은 막지 않지만, 우크라이나 문제를 논의한다면 우크라이나가 그 자리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회동을 제안한 러시아도 이 원칙을 인정한다. 페스코프는 19일 회동 가능성을 설명하면서 책임질 준비가 된 키이우 측 인사의 참여 없이는 최종 해결에 이를 수 없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가 빠진 3자 회동에서는 종전을 결정할 수 없다고 러시아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그렇다면 러시아가 이 회동에서 얻으려는 것은 종전 합의가 아니다. WSJ의 분석대로 강대국으로 대접받는 장면과 유럽이 빠진 협상 구도다.
트럼프 행정부가 실제로 굴리고 있는 협상도 우크라이나를 뺀 형식이 아니다. 위트코프는 20일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젤렌스키와 노르웨이·핀란드 정상을 만났고, 21일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푸틴을 만났다. 미국 관리는 미국 매체 Axios에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미·러·우 실무급 3자 협상 재개를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우샤코프는 시기로 11월 10일 무렵을 제시했고,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를 가능한 장소로 꼽았다. 둘 다 '3자'라고 불리지만 전혀 다른 형식이다. 하나는 우크라이나가 빠진 미·중·러 정상회동 구상이고, 다른 하나는 우크라이나가 들어간 미·러·우 실무 협상이다. 종전 조건을 실제로 다루는 쪽은 뒤의 것이다.
그래서 이번 일에서 무게가 실린 것은 회담 일정이 아니다. 미·중·러 정상회동은 의제가 맞지 않아 아직 구상에 머물러 있고, 열리더라도 상징적인 만남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트럼프의 말이다. 그는 우크라이나 없이 우크라이나 전쟁의 끝을 논의할 수 있고, 우크라이나의 협상 대표를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자기 특사가 우크라이나를 넣어 진행하는 협상 방식과도 어긋나고, 크렘린 대변인조차 인정한 원칙과도 어긋난다. 전쟁 당사국이 협상에서 어떤 자리를 갖는지는 제3국 정상이 정할 일이 아니다. 회담이 열리든 열리지 않든, 이 발언은 우크라이나와 유럽을 뺀 강대국 협상이라는 러시아가 바라는 구도에 미국 대통령이 문을 열어 준 것이다. 이 전쟁이 어떻게 끝날지 가늠하려면 11월 선전에서 세 정상이 만나는지보다, 11월 10일 무렵 시작될 실무 협상에서 우크라이나의 자리가 지켜지는지를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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