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 경제

SK하이닉스, 솔리다임 미국 상장 검토 중단…미국 공장 자금은 다시 원점

HBM으로 큰돈을 벌고 있는 메모리 반도체 회사 SK하이닉스가 10월 23일 개장 전 공시를 냈다. 미국 손자회사 솔리다임의 상장 전 투자유치(프리IPO)와 미국 증시 상장(IPO) 검토를 모두 중단한다는 내용이다. 프리IPO는 상장 전에 기관투자자에게 지분을 팔아 자금을 먼저 모으는 절차다. 상장 준비가 처음 보도된 8월 5일부터 79일 만이고, 최종 결정은 22일 밤에 내려졌다. 회사가 밝힌 이유는 "최근 자본시장 여건과 주가 흐름을 고려할 때 IPO가 SK하이닉스와 기존 주주들에게 가장 유리한 선택인지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접은 것은 상장, 남은 것은 공장

이번에 멈춘 것은 돈을 구하는 방법이지, 돈을 쓸 곳은 아니다. SK하이닉스는 같은 날 솔리다임의 성장 가능성과 투자 필요성에 대한 판단은 달라지지 않았고, 미국에 새 생산시설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투자 시기·규모·조달 방식은 다시 검토한다. 다만 회사 관계자는 당분간 IPO를 검토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따라서 이 결정을 이해하려면 세 가지를 차례로 봐야 한다. 솔리다임은 왜 큰돈이 필요했나, 주주들은 왜 그 돈을 외부에서 받는 데 반대했나, 그리고 왜 하필 지금 접었나.

솔리다임은 왜 돈이 필요했나

솔리다임은 SK하이닉스가 인텔에서 사들인 낸드플래시·SSD 사업으로 만든 미국 회사다. 낸드플래시는 전원이 꺼져도 데이터를 보관하는 메모리 반도체이고, SSD는 그 칩으로 만든 저장장치다. 솔리다임의 주력은 AI 데이터센터용 고용량 기업용 SSD(eSSD)이고, 칩은 중국 다롄 공장에서 만든다. 2026년 초 재편으로 SK하이닉스와 솔리다임 사이에 미국 중간지주사 AI컴퍼니가 들어서면서, 솔리다임은 SK하이닉스의 자회사에서 손자회사가 됐다. 인수 직후 2022~2023년에는 해마다 수조원의 손실을 냈다. 그러다 AI 수요를 타고 올해 상반기 낸드 사업은 매출 12조2507억원, 순이익 5조8396억원을 기록했다.

수요가 늘자 이번에는 생산시설이 모자라게 됐다. 회사는 기존 시설로는 늘어나는 수요를 감당하기 어려워 미국에 새 공장이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로이터는 9월 관계자 취재를 통해, 솔리다임이 뉴욕주 북부를 유력 후보지로 두고 미국 낸드 공장을 검토한다고 전했다. 회사는 구체적 계획이 정해지지 않았다고 답했다. 증설 장소가 중국 밖이어야 하는 사정도 있다. 미국 상무부 산업안보국은 2025년 8월, 중국에 있는 외국계 반도체 공장에 대해 기존 공장 운영용 장비 수출은 허가하되 생산능력 확대나 기술 고도화용 허가는 내줄 의도가 없다는 방침을 밝혔다. 미국의 허가 없이는 다롄 공장을 키우기 어렵다는 뜻이다.

공장 짓는 돈을 외부 투자자에게서 받으려 한 데는 회사 나름의 논리가 있었다. 솔리다임이 외부에서 돈을 모으면 SK하이닉스의 현금은 다른 설비투자와 배당·자사주 매입·소각에 쓸 수 있다. 또 따로 상장하면 SK하이닉스 주가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던 솔리다임의 가치를 시장에서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준비도 꽤 나아가 있었다. 로이터는 9월 25일, 초기 협의에서 이르면 2027년 상장, 최대 기업가치 1500억 달러, 조달액 150억 달러가 거론된다고 보도했다. 150억 달러는 약 20조원이다. 10월 16일에는 프리IPO 50억 달러 모집이 마무리되고 투자자별 조건을 협상 중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회사는 공식적으로는 끝까지 검토 중이지만 확정된 사항은 없다는 입장을 지켰다.

주주들이 물은 것: 현금이 있는데 왜 지분을 파나

주주들의 반대는 두 가지 손해에 대한 걱정이었다. 첫째는 희석이다. 솔리다임 지분 일부가 외부 투자자에게 넘어가면, 솔리다임이 앞으로 벌 이익 가운데 SK하이닉스 주주에게 돌아올 몫이 그만큼 줄어든다. 둘째는 중복상장 할인이다. 상장된 자회사를 거느린 모회사의 주가는 자회사 가치를 온전히 반영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SK그룹 반도체 부문은 이미 SK㈜, SK스퀘어, SK하이닉스로 상장사가 겹겹이 쌓여 있다. 그 아래 비상장 AI컴퍼니를 거쳐 솔리다임까지 상장하면 할인이 더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걱정을 '왜 굳이'라는 질문으로 바꾼 것은 SK하이닉스의 현금이다. SK하이닉스는 6월 말 연결 기준 현금성 자산이 약 88조원이고, 차입금을 뺀 순현금이 약 69조4000억원이다. 소액주주 플랫폼 액트는 9월 21일 주주 92명의 뜻을 모은 서한을 보냈다. 서한은 자금이 왜, 얼마나 필요한지, 자체 자금이나 차입과 비교하면 어떤지 이사회가 설명하라고 요구했다. 10월 21일 무렵 액트에는 주주 약 3000명, 보유주식 약 4000억원어치가 모였다. 지배구조 개선을 주장해 온 단체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도 10월 20일 논평을 냈다. 포럼은 이번 상장이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통제력은 유지되면서 일반주주만 희석 비용을 떠안는 이해상충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SK하이닉스가 AI컴퍼니를 통해 직접 출자하고 솔리다임 지분을 모두 지키라고 요구했다.

회사의 반론에도 근거는 있었다. SK하이닉스는 10월 1일 입장문에서 재무 여력이 충분하다고 모든 투자를 자체 현금으로 하는 것이 자동으로 최선은 아니다라고 했다. HBM·서버용 D램·eSSD 투자를 한꺼번에 따져 자본을 나눠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투자 수요는 빠르게 커지고 있다. 6월 말 앞으로 설비를 사기로 약정한 금액은 61조4845억원으로, 반년 새 약 9배가 됐다. 최근 자사주 취득에도 약 40조원을 썼다. 희석의 크기가 생각보다 작을 수 있다는 분석도 있었다. 블룸버그 인텔리전스는 솔리다임이 SK하이닉스 순이익의 10%를 차지한다고 가정했다. 그러면 외부 투자자에게 지분 10%를 줄 때 SK하이닉스 주당순이익은 약 1% 줄어든다는 계산이다.

그런데 이 논쟁에서 판단 기준은 처음부터 양쪽이 같았다. SK하이닉스는 같은 10월 1일 입장문에서, 외부 조달은 자체 현금에 기대는 경우와 견줘 기존 주주의 경제적 가치에 미치는 영향을 비교해 판단하겠다고 밝혔다. 액트가 요구한 비교와 똑같은 기준이다. 갈린 것은 그 비교 결과를 숫자로 보여 주느냐였다. 회사가 내놓은 것은 원칙이었고, 외부 조달과 자체 자금을 실제로 비교한 자료는 공개되지 않았다.

왜 하필 지금 멈췄나

회사가 든 이유인 시장 악화는 실제로 일어났다. 결정 전날인 10월 22일 미국에서 나스닥지수는 2.60%,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는 6.72% 떨어졌다. 미국 낸드 업체 샌디스크의 주가는 6월 고점보다 약 40% 낮은 수준이었다. 비슷한 회사들의 주가가 떨어지면 솔리다임이 상장에서 받을 기업가치도 낮아진다. 기업가치가 낮으면 같은 돈을 모으려고 더 많은 지분을 내줘야 하므로, 희석은 블룸버그 인텔리전스가 가정한 것보다 커진다. 회사가 내세운 기준대로 자체 현금과 견줘 따지면, 외부 조달의 이점이 줄어든 것이다.

같은 주에 그 비교를 공개적으로 해야 한다는 압력도 분명해졌다. 8월 3일 시행된 중복상장 규정은 자회사가 해외 증시에 상장할 때도 국내 상장 모회사 이사회에 5대 의무를 지운다. 이사회는 독립이사 중심의 특별위원회 심의를 거쳐 주주에게 미칠 영향을 평가하고 보호방안을 공시해야 한다. 이어 주주와 소통하거나 동의를 확인하고, 최종 찬반을 결의해 공시해야 한다. 상장을 금지하는 규정은 아니다.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은 10월 19일 국정감사에서 금융위와 금감원이 솔리다임 상장을 이 규율 대상으로 본다고 했다. 이억원 금융위원장도 22일 SK하이닉스와 SK스퀘어가 각각 5대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고 못박았다. 회사가 원칙만 말해 온 비교를 이사회 문서로 만들어 주주 앞에 내놓아야 한다는 뜻이었다. 상장 중단 결정은 이 위원장의 발언이 나온 바로 그날 밤에 내려졌다.

SK하이닉스는 정부의 중복상장 규제 강화가 직접적인 배경은 아니라고 했다. 이 부인과 정황은 서로 부딪히지 않는다. 시장 하락은 비교의 답을 외부 조달에 불리한 쪽으로 기울였고, 당국의 발언은 그 비교를 공개 절차로 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불리해진 비교를 공개 절차에 올리는 대신 검토 자체를 멈췄다는 것이, 확인된 사실들을 가장 잘 설명하는 그림이다. 이사회가 어떤 자료를 보고 판단했는지는 공개되지 않았다. 그래서 시장과 당국 압력 가운데 무엇이 더 무거웠는지는 회사 밖에서 가늠할 수 없다. 다만 어느 쪽이든, 회사가 스스로 세운 기준에 비추면 지금 상장을 접은 것은 맞는 결정이다.

해외 상장 규칙은 시험받지 않았다

이번 중단으로 해외 상장 규칙이 실제로 작동하는지는 확인되지 않은 채 남았다. 한국거래소는 해외 거래소의 상장을 미리 심사하지 못한다. 모회사가 5대 의무를 어기고 자회사를 해외에 상장해도, 상장 뒤에 최대 10억원의 상장계약위약금과 하루 매매거래정지 같은 제재를 받을 뿐이다. 의무가 언제부터 생기는지도 분명하지 않다. 액트가 한국거래소에 의무가 생기는 시점과 이행을 확인하는 기준을 따로 물은 것도 이 때문이다.

솔리다임 사례는 그 빈틈이 어디에 있는지 보여 줬다. 프리IPO가 50억 달러 모집 단계까지 갔다는 보도가 나오는 동안에도, 이사회 검토는 회사가 '구체안이 정해지면 하겠다'고 밝힌 미래의 일로 남아 있었다. 박성훈 국민의힘 의원은 22일 국정감사에서 이 점을 짚었다. 절차를 최종 상장 직전까지 미룰 수 있으면 투자계약과 조건이 다 정해진 뒤 형식적으로 이행될 수 있다며, 프리IPO 단계부터 의무화하라고 요구했다. 이억원 위원장은 의무 이행 과정이 주주 소송의 근거로 남는다고 설명하면서 보완 요구를 살펴보겠다고 답했다. 이번에는 주주 집단행동과 국정감사 압박, 시장 하락이 한꺼번에 겹쳐 상장이 멈췄다. 하지만 다음 해외 상장이 같은 조건에서 진행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남은 질문: 공장 자금은 어디서

시장은 중단을 반겼다. 23일 SK하이닉스 주가는 전날 미국 기술주 급락의 여파로 장 초반 117만1000원까지 밀렸다. 그러다 127만7000원, 4.42% 오른 채 마감했다. 허재환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반등 배경으로 중복상장 우려가 풀린 점과, 7월 저점 수준까지 내려온 주가에 저가매수가 들어왔을 가능성을 꼽았다.

하지만 미국 공장에 들어갈 돈이라는 문제는 그대로다. 양현경 iM증권 연구원은 이번 중단이 할인·희석 우려를 덜어 주지만 외부 조달 기회가 줄어 투자자금 부담이 커질 수 있다고 했다. 남은 선택지는 SK하이닉스의 자체 자금, 회사채나 은행 차입, 다른 기업과의 공동투자, 그리고 솔리다임이 스스로 버는 돈이다. 자체 자금은 희석이 없지만 다른 투자와 배당·자사주에 쓸 돈과 겹친다. 차입은 지분을 지키는 대신 이자와 상환 부담을 진다. 공동투자는 부담을 나누는 만큼 성장 이익도 나눈다. 아직 어느 것도 정해지지 않았다. 김선우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28일 3분기 실적발표에서 강화된 주주환원 방안이 나올 가능성을 내다봤다. 그런데 주주환원도 결국 공장 자금과 같은 현금을 나눠 쓰는 문제다.

그래서 이번 결정이 남긴 과제는 상장 여부보다 크다. SK하이닉스가 이번에 쓴 기준, 곧 '기존 주주에게 가장 유리한 방식인가'는 상장을 접을 때만이 아니라 대안을 고를 때도 그대로 적용돼야 한다. 거버넌스포럼은 중단을 환영하면서도 이 결정이 이사회 심의·의결을 거쳤는지 공개하라고 요구했다. 같은 비교를 공개하라는 요구다. 포럼은 다른 질문도 남겨 두었다. SK㈜·SK이노베이션·SK텔레콤이 AI컴퍼니 지분을 상장 기대가 반영되기 전 낮은 값에 샀다면, 솔리다임의 가치 일부가 다른 계열사로 넘어갈 수 있다는 조건부 의혹이다. 이 의혹은 아직 판단할 평가 자료가 나오지 않았다. 주주들이 처음부터 요구한 것은 상장 반대 자체보다 자체 자금과 견준 비교였다. 그 비교는 상장과 함께 사라지지 않았고, 이제 공장 자금을 정하는 자리로 옮겨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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